[뉴스룸에서-남혁상] 대통령의 스타일 기사의 사진
파면 3주 만에 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구속은 끝이 아니다. 재판을 통해 자신에게 적용된 13가지 혐의의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 뇌물수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면 징역형이 불가피하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의 파면, 그리고 구속은 박 전 대통령 개인으로선 참담한 비극이다. 국민과 국가에도 큰 불행이다. 앞으로 검찰의 공소 제기, 형사재판 등 많은 절차가 남았지만 박 전 대통에게 형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긴 이미 어렵게 됐다.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해도 이미 마침표를 찍은 정치인생은 달라질 게 없을 듯하다.

사실 돌이켜보면 박 전 대통령에겐 현 상황까지 오지 않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들이 보기에 박 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좋게 말하면 원칙을 유난히 강조하던 대통령이었다. 적어도 대부분의 청와대 참모들은 그렇게 봤다. 나쁘게 보자면 높은 장벽 안에 스스로 갇혀버린 통치권자였다.

청와대 기자들은 참모들에게 여러 번 질문을 던졌다. 언제나 정제된 모범답안 같은 발언과 답변 대신 국민과의 자유로운 소통을 한번 시도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온 것은 “대통령 업무 스타일을 잘 알지 않느냐” “박 대통령 스타일은 그런 게 아니다”는 것이었다. “과거 대통령들처럼 보여주기식 액션은 하지 않는다”는 보충설명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나 대통령을 가까이 보좌했던 참모들이 간과했던 게 있다. 이런 전제가 성립되려면 최소한 내부에서의 소통,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수용이 전제됐어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내에서도 극소수의 인사들과만 소통했다. 그마저 대부분 일방적 지시였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대통령 지시가 합당한 것인지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 지시는 곧 이행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전직 청와대 참모는 최근 “공직자 출신 참모였다면 직권남용일 수 있는 대통령 말을 모두 그대로 이행했을까”라고 되물었다.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이 있었더라면, 대통령에게 진언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과거의 불행한 개인사는 배신의 트라우마를 박 전 대통령에게 덮어씌웠다. 철저하게 자신이 믿고 의지할 사람 말만 듣게 된 것도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최순실 사태 초기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죄와 반성을 했다면, 검찰·특검 조사에 응했더라면, 헌법재판소에서 진실을 밝혔더라면 일말의 동정심은 얻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극소수의 측근에만 의지했다. 모든 궁극적인 책임은 봉건시대 틀에서 한 발치도 나가지 못한 박 전 대통령에게 있음은 물론이다.

박근혜 시대는 끝났고, 박근혜정부도 실패했다. 배신을 그토록 증오했던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을 배신했다. 현실과의 괴리 속에 불통은 뚝심과 원칙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했고, 비판은 무책임한 비난과 정략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부여한 권한과 의무는 대통령의 권위라고 착각했다. 그 결과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가 임기 내내 강조해온 ‘적폐 청산’의 주인공이 돼버렸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36일 남았다. 차기 대통령은 무엇보다 솔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문제의 해법은 소통에서 나온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국민 여론을 편견 없이 청취하고 참모들에겐 고민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그게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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