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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합동 역사관, 두루마리 토라·칼뱅의 ‘기독교 강요’ 등 눈길

총회 설립 105년 만에 세운 예장합동 역사관을 가다

예장합동 역사관, 두루마리 토라·칼뱅의 ‘기독교 강요’ 등 눈길 기사의 사진
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 정성구 목사(오른쪽 첫 번째)가 31일 총회역사관 개관식에서 참석자들에게 14세기 유대회당에서 사용하던 '토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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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총회역사관에 들어서자 어른 몸집보다 큰 대형 두루마리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14세기 유대회당에서 사용하던 토라(Torah, 율법서인 모세오경)였다.

정성구(75·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 목사는 “당시 서기관이 유대인들의 전통방식으로 양피지에 직접 기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536년에 출판된 칼뱅의 ‘기독교강요’ 초판 사본도 눈에 띄었다. 정 목사는 “‘기독교강요’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한국칼빈주의연구원에 선물로 보내준 복사본”이라며 “칼뱅의 친필로 기록된 이사야서 설교문이 수록돼 있어 희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김선규 목사) 총회회관 1층에 175㎡(53평) 규모로 마련된 역사관엔 장로교 및 한국교회의 발자취가 담긴 사료 20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4세기쯤 아랍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파피루스 성경 조각, 칼뱅주의의 5대 신앙고백으로 꼽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문답서 등 해외에서 들어온 유물도 많았다.

1920년대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만주·몽골 지역 선교계획을 표시해 놓은 지도, 일제 강점기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궁성요배(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하는 것)’를 강요당하고 황국신민에 대한 맹세를 제창했던 증거가 담긴 교회 주보, 신앙생활에서 극복해야 할 일곱 가지를 논한 마펫 선교사의 칠극보감(七克寶鑑), 정암 박윤선(1905∼1988) 박사의 서신 등 한국교회의 발자취를 증언하는 유물들도 전시관을 채웠다.

예장합동이 장로교와 교단 역사 사료들을 집대성해 박물관을 세운 것은 총회 설립 105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이날 총회회관에서 열린 개관식엔 총회 임원, 전 총회장단, 주요 유물기증자 등이 대거 참석했다. 역사관은 2015년 9월 예장합동 제100회 총회에서 ‘총회 역사자료실 및 역사위원회 설치의 건’이 결의되면서 추진됐다. 예장통합과 고신 등 타 교단 역사사료관 탐방, 역사관 설치 워크숍, 한국칼빈주의연구원과의 협약 체결 등 1년 6개월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어려움도 많았다. 역사의식의 결핍, 재정과 사료의 부족 등으로 수차례 개관이 연기됐다. 김정훈 총회역사위원장은 “숱한 위기 속에서도 역사관을 개관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 정체성을 바로세우기 위한 열망과 정성구 목사 등 귀중한 소장품을 기증해 준 손길들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말했다. 총신대, 대신대 총장을 지낸 정 목사는 1985년 한국칼빈주의연구원과 칼빈박물관을 설립, 기독교 관련 유물 1만여점을 수집했다. 그는 이번 역사관 개관을 위해 평생 수집하고 보존해 온 유물의 진수를 내놨다.

기증자 대표로 인사를 전한 정 목사는 “지난 55년간 장로교 역사를 간직한 유물들을 구하기 위해 이동한 거리가 지구 10바퀴는 족히 될 것”이라면서 “총회가 역사의식을 갖고 역사관을 세우는 뜻 깊은 일에 쓰임 받게 돼 감격스럽다”며 눈가를 적셨다.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그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란 말처럼 총회역사관이 장로교 역사를 바로 알려주고 교단이 앞으로 걸어갈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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