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한승주]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기사의 사진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기억교실’에 다윤이 자리는 없었다. 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실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곳이다. 다윤이는 미수습자다. 가족과 친구들의 품을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희생자를 기리는 기억교실에 다윤이 책상은 없다. 2학년 1반 조은화, 6반 남현철 박영인 학생도 마찬가지다. 다른 책상에는 고인을 기억하는 사진과 편지 등이 수북한데 4명은 친구들과 떨어져 있다. 이들의 책상은 아직도 단원고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교장실 한편에 미수습자인 고창석 양승진 교사의 책상과 함께 놓여있다.

3년 만에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참사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찾고, 해결책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앞서는 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단원고 기억교실 건물 벽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 제목이 적혀 있다.

햇살이 너무 좋아 오히려 슬펐던 지난 주말,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와 기억교실을 찾았다. 분향소에 들어서는 순간, 희생자 304명의 영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숫자로 알던 304명과는 또 다른 무게의 거대한 슬픔이었다. 한 명 한 명의 영정사진과 그들을 추모하는 편지와 물품, 미처 맞지 못한 스무 살 생일을 축하한다는 꽃다발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출발점은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을까.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이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며 속이 타들어가고 있을 때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물렀다. 그 긴박했던 7시간 동안 그가 뭘 했는지는 아직 명쾌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보충의견에도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보호에 대한 성실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가장 중요한 초기에 30분 이상 발생 사실을 늦게 인식해 대처에 미흡했음을 적시하지 않았던가.

박근혜정권은 세월호 구조에 적극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후 진상규명을 비롯한 선체인양 등에도 소극적이었다. 인양비용을 내세워 어차피 찾지도 못할 9명의 미수습자 때문에 국민 세금을 낭비해야 하느냐는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세월호는 단지 하나의 배가 아니라 우리 시대 아픔의 상징이다. 불법 증축, 과적,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 등 각자 ‘나 하나쯤이야’하며 맡은 일을 소홀히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물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 공직자의 안일함과 무사안일주의, 겉으로만 멀쩡해 보였던 썩은 시스템을 낱낱이 드러낸 상징이자 뼈아픈 교훈이었다. 돌이켜 보면 세월호 침몰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리더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국민은 더 이상 대통령과 국가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정권이 설 자리는 없다. 지난겨울 광장에 모인 1500만개의 촛불이 이를 입증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외침은 박근혜 개인을 넘어, 실패한 국가를 향한 분노였다. 5월 9일 선출될 새 대통령도 이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세월호가 물에서 뭍으로 오던 날, 전직 대통령은 구속 수감됐다. 유난히 길고 추었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한 시대가 역사의 한편으로 저물고 새 시대가 다가왔다. 이제는 한겨울 내내 꽃봉오리를 준비해온 나무처럼 희망을 품을 때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이 이뤄지고, 미수습자 9명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한다.

한승주 문화부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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