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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2012년 패배 딛고 ‘대세 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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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2004년 5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임명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 후보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 빈소에서 통화를 하고 있다. 2012년 12월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부산의 한 백화점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문 후보가 지난달 4일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다(위쪽 사진부터). 이병주 기자, 국민일보DB,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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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영원한 비서실장’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드디어 대세론의 주인공이 됐다. 2차례의 구속, 정치인생 동반자의 비극적 운명을 딛고 그는 5년 만에 다시 민주당 후보로 대선을 치르게 됐다.

문 후보는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72년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한 문 후보는 운동권에 투신해 75년과 80년 두 차례 구속됐다. 특전사 제대 후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고, ‘서울의 봄’으로 구속돼 유치장에서 사시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후보는 판사를 희망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임용되지 않아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부산에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서 정치권에 입문했고, 문 후보는 부산에서 노동운동 지원 활동을 계속했다. 두 사람은 문 후보가 2002년 대선 경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재결합했다. 이후 문 후보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을 맡으며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부분을 지근거리에서 함께했다.

문 후보는 이명박정부 시절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나서자 변호인 겸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정치권의 러브콜을 외면했던 그는 결국 2012년 19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문 후보는 2012년 대선에서 48% 득표로 선전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53% 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대선 이후 당권과는 거리를 둬왔지만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공개’ ‘세월호 단식’ 등 정치 이슈의 한복판을 떠나지는 않았다. 그는 2014년 12월 당대표 선거에 전격 출마해 당권을 쥐었다.

그러나 ‘문재인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5년 4월 재보선에서 전패하면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게 당권을 물려주고 물러났다.

당대표 사퇴 후에도 문 후보는 몇 차례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해 4·13총선에서는 ‘호남 지지 철회 시 대선 불출마’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러나 민주당은 호남 28석 중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총선 이후에도 위기는 있었지만 문 후보는 탄핵 정국에서 확보한 대세론을 끝까지 내세워 본선 티켓을 손에 쥐었다.

문 후보의 올해 대선 환경은 5년 전과는 천양지차다. 2012년과 가장 달라진 점은 다각화된 경쟁구조다. 당시에는 박 전 대통령과 일대일로 맞붙어 패했다. 이번엔 보수 진영이 궤멸되다시피 했다. 범보수 후보 지지율을 합해도 10% 남짓에 불과하다.

대신 야권 내 경쟁은 치열해졌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뒤쫓고 있다. 진보 지지층의 분열이 불가피한 상황은 중도·보수 진영에 대한 구애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원세력 지형도 변했다. 문 후보는 2012년 당 조직보다는 외곽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대선을 치렀다. 하지만 이번엔 민주당 조직이 확실하게 뒤를 받치면서 당 안팎의 지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당 지도부는 안희정·이재명 캠프까지 흡수해 당 중심의 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민주당 조직은 문 후보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될 전망이다.

정책 준비도 탄탄해졌다. 문 후보는 싱크탱크 ‘국민성장’ 출범 전부터 수년간 학계 인사들과 정책을 준비해 왔다. 경선 과정에서 “혼자 너무 앞서나가면 생뚱맞아 보인다”며 캠프에서 정책 발표 속도를 조절했을 정도다.

문 후보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변사람들은 “문 후보에게 확실한 권력 의지가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2012년 등 떠밀리듯 대선에 출마했던 것과는 상전벽해 수준이다. 그는 지역조직 확대를 위해 담당자들이 원하면 언제든 지지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유력 인사를 만나면 “다른 사람에겐 다음 기회가 있지만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읍소해 기어이 승낙을 받아냈다.

글=최승욱 강준구 기자 applesu@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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