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현동] 전략적 모호성 기사의 사진
‘요청도 없었고(no request), 협의도 없었고(no consultation), 결정된 바도 없다(no decision)’. 한반도 사드 배치와 관련한 박근혜정부의 입장이었다. 이른바 3NO인데 유식한 말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다.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음으로써 협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이다. 사드가 딱 그랬다. 배치를 거부하자니 미국에 눈치 보이고, 배치하자니 중국이 두렵다. 미국은 군사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다. 동맹국을 배반하기도, 무역 상대국을 무시할 수도 없다. 힘이 약한 나라의 유효한 생존전략의 하나였다.

전략적 모호성은 미·중 사이에 낀 우리로서는 고육지책이다. 더욱이 지속가능한 전략이 아니라는데 한계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전략적 모호성은 ‘눈치보기’ 전략이다. 미국 눈치보고, 중국 눈치보다 국론만 분열됐다. 이 전략은 김정은의 4차 핵실험으로 시험대에 올랐고 이후 2016년 7월 박근혜정부가 사드 배치를 선언함으로써 실효를 다한다.

대선을 앞두고 사드와 관련한 전략적 모호성이 뜨거운 감자다. 얼마 전 끝난 민주당 경선에서의 논란은 예선전 성격이 짙다. 중심에 문재인 후보가 있다. 문 후보는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 안보도 지키고 국익도 지켜낼 수 있는 복안도 있다”고 했다. 복안이 뭔지는 모르겠다. 문재인식 전략적 모호성이다. 민주당 역시 ‘당론을 정하지 않는 것이 당론’이라고 말한다. 각 당 후보가 맞설 본선에서의 논란은 훨씬 뜨거울 게 뻔하다.

안보도 지키고, 국익도 지켜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미·중 모두를 만족시키는 전략은 쉽지 않다. 만일 있다면 어느 한쪽을 선택했을 때보다 훨씬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물으나 마나다. 전략적 모호성은 때론 상대에게 잘못된 시그널과 함께 혹독한 공격의 빌미를 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대로다. 칼집에서 꺼낸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는 순간 칼은 이미 칼이 아니다. 자칫했다간 뺨맞고 코피까지 터진다.

글=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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