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신창호] 영혼이 메마르면 사막으로 가라 기사의 사진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난 꼬부랑 도로를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죽은 바다’ 사해(死海)가 나온다. 사해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은 유대사막이다. 이곳의 1년 강수량은 10㎜ 정도밖에 안 된다. 100㎞ 정도 떨어진 예루살렘 강수량이 연간 600㎜나 되는데, 이곳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유는 해수면보다 낮은 위치와 산악지대 때문이다. 지중해를 건너온 구름은 예루살렘을 지나자마자 다 사라져 버린다.

이 사막지대의 토양은 모래가 아니라 진흙이다. 점토가 찔끔 내리는 비의 수분을 단 한 방울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움켜쥔다. 수분이 사라지고 나면 진흙은 서로 단단히 뭉쳐져 마치 한옥 황토벽처럼 단단해진다. 진흙 절벽과 골짜기가 생기고, 그 사이에 풀과 나무덤불이 띄엄띄엄 생존한다.

유대사막은 ‘세례 요한’이 마지막 생을 보낸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준 뒤 유대교 랍비를 신랄하게 비판한 그는 스스로 이곳으로 은둔한 채 모든 생사를 하나님께 의탁했다.

로마시대의 예루살렘은 유대사막과 정반대였다. 사람들이 뒤섞여 촘촘하게 엮인 도시를 만들었다. 풍성한 비 덕분에 생물이 자라고, 도시는 자연을 넘어 점점 더 인공적이 됐다. ‘좀 더 편리하게!’ 그게 모토였다.

도시의 본질은 그때로부터 2000년이 흘렀어도 같다. 더 복잡하고 첨단의 현대문명이 가득한 곳에서 사람들은 훨씬 편해졌다. 전기 상하수도 자동차 거미줄도로망 지하철…. 거기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인터넷까지. 촘촘한 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간다. 문명은 계속 발전하고, 그 발전은 거침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형세다.

도시에 살다보면 인공과 속도에 감염된다. 빠르게 바뀌는 도시의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돌아보기는커녕 자기 자신도 되돌아볼 여유를 갖기 힘들어진다.

너무나도 편리한 도시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그렇게 자신만을 위해 살다보면 언젠가 꿈꾸던 성공이 도래할 것이라 여긴다. ‘나’만 잘하면 인생 전체를 ‘내’가 전적으로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아갈수록 점점 더 가슴과 머리에서 형이상학의 흔적이 사라져 간다. 우리가 어떻게 생을 얻게 됐는지, 삶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등등은 세상살이에 지쳐 더 생각하기 귀찮아진다. 바쁘게 살다 며칠 휴가를 내 쉰다 하더라도 그 휴식은 단지 쾌락과 유희에만 그친다. 즐겁게 한동안의 시간을 보내면 그뿐이다.

이스라엘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영혼이 메마르면 사막을 가라.” 보이는 건 진흙과 풀뿌리 몇 조각밖에 없는 황무지에 혼자 나가보면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막에선 단 한순간도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다. 걷고 있지만 지금 걷는 길이 살아남을 길인지 죽을 길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무거운 것들은 다 버려야 사막을 건널 수 있다. 저 건너 도시에서 지니고 왔던 일체의 소유물을 던져버려야 사막을 버텨낼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지푸라기 붙잡듯 위태로운 게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란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내’가 ‘나’를 좌우할 수 없게 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절대자를 요청하는 일이다. 모든 게 신의 뜻에 맡겨져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만의 사막을 피할 수는 없다. 좌절하고 절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더 이상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 온 힘을 다해 살아왔지만, 잡고 있던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말이다. 그때쯤 자신의 초라한 영혼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와 똑같이 사막을 걷고 있는 다른 이의 소중한 걸음걸이도 보일 것이다. 함께 손잡고 서로 도와야 공존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창호 종교기획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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