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뉴멕시코, 스카이 시티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1980년대 말 처음 미국 서부를 여행했을 때, 광활한 땅을 빼곡하게 메우며 서 있는 거대한 선인장들의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그 이후 나는 선인장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도 같다. 대자연 속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돌과 바위와 선인장들은 그 자체로 위대한 설치미술이었다. 지금도 남은 나의 여행계획 중 하나는 자동차를 빌려 마음 맞는 친구 서너 명과 함께 뉴욕에서 산타페까지 대륙횡단을 하는 것이다. 미국 여행의 매력은 그 거대한 자연의 카리스마에 뜨겁게 안겨보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여행했던 수많은 미국 서부의 도시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뉴멕시코주의 도시들이다. 1991년 봄, 가까운 화가들과 함께 백년의 삶을 그곳에서 마감한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도시 산타페를 향해 떠났다. 산타페의 자연과 기운을 화폭에 쏟아 넣으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노년을 보냈던 ‘조지아 오키프’는 그 시절 내 삶의 멘토였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오키프의 그림 속에 나오는 죽은 동물의 뼈가 작품 속처럼 놓여있는 사막의 석양이 떠오른다. 예술적 열정이 넘치는 매력적인 도시 산타페에서 며칠 안 가 우리 일행은 심하게 다투었다. 지금 생각하니 왜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눈에 밟히는 산타페의 정경들만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로 나는 가까웠던 미국 친구가 앨버커키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친구도 볼 겸 여행도 할 겸 뉴멕시코에 두 번 더 갔다. 다시 갈수록 뉴멕시코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미국의 광활한 서부, 그중에서도 뉴멕시코는 스페인문화에 인디언들의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문명이 정착한 곳이다. 첫 번째 그곳에 갔을 때는 그랜드 캐니언에서 시작해서 애리조나를 거쳐 뉴멕시코로 들어갔다. ‘화이트샌드’의 끝없는 하얀 모래사막과 ‘페인티드 데저트’의 색색으로 얼룩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한 뒤 뉴멕시코로 들어서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문명의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미국 뉴올리언스가 음악의 도시라면 미술의 도시인 산타페는 독특한 인디언 그림들과 공예품들을 파는 갤러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작지만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을 지닌 타오스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유난히 자존심 강한 인디언들은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이나 공예품의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나바호 인디언이 약 만 명이나 되고, 그중 생존자 200여명이 다 구십대가 넘었다 한다. 우리들의 얼굴과 비슷한 인디언들이 낯선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뉴멕시코 여행을 했을 때는 미국인 친구의 안내로 속속들이 안 가 본 곳을 가보았다. 친구가 살고 있던 도시 앨버커키의 구석구석을 구경하다가 오리엔탈 음식점에 들어갔던 생각이 난다. 친구는 그 시절에도 채식주의자라 고기를 먹지 않았고, 우리는 두부요리와 샐러드를 시켜 먹었다. 음식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때만 해도 뉴멕시코에서 한국인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뉴욕에 가보는 게 꿈이라던, 그 시절 나이 사십은 넘었을 그녀는 미군과 결혼해 이곳으로 와 20년째 그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꼭 가보라고 한 곳이 앨버커키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하고 가서 만났던, 아코마 푸에블로 인디언 거주지인 ‘스카이 시티’이다. 거대한 절벽을 깎아질러 만든 스카이 시티에 도착하면 달 표면에 착륙한 기분이 든다. 절벽 꼭대기에 천국처럼 존재하는 하얗고 파란 마을, 그 시절에도 젊은이들은 거의 도시로 떠나고 주로 노인들만 남아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만든, 진흙으로 된 집들의 풍경이 꿈속 같다. 어도비 형식이라 불리는 독특한 건축물들의 배경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성당과 공동묘지, 아코마 푸에블로 인디언들만의 독특한 수공업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모계사회인 그곳은 원래 일부일처제의 사회이며 이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아름답고 낯선 화성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스카이 시티에서 친구는 내게 농담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한 다섯 낳고 평화로운 이곳에서 같이 살자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나쁘지 않을 걸 그랬다. 하지만 산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올라갈 때는 셔틀버스를 탄 것 같기도 한데, 내려갈 때는 일부러 절벽을 기어 내려왔다는 기억이 난다. 무섭고 아슬아슬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생각해보니 먼먼 옛이야기다. 지금도 눈에 밟히는 스카이 시티의 풍경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꿈속을 찾아가듯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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