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생명경시 이대로 괜찮나 기사의 사진
TV드라마를 즐겨 시청하진 않지만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리모컨을 쥔 아내에게 떠밀려 가끔씩 본다. 그런데 가족 시청 시간대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들을 굳이 보여줘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바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암시하는 장면들이다. 현재 방영 중인 MBC의 밤 10∼11시대 수목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를 보자. 지난달 15일 시작된 이 드라마는 첫 방송에서 극중 배우들이 한강대교에서 투신하려는 장면이 두 번이나 묘사됐다. 옆에 있던 초등생 아들이 볼까 겁나 아내가 급히 채널을 돌렸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문의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했다는 답을 들었다. 해당 장면이 혐오를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생명 경시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어 민원을 넣었다고 했다. 뛰어내리려 대교 난간에 올라서 있는 장면 등은 한강다리를 ‘자살 명소화’하고 자살 방법을 알려줄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얼마 전 종영된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내성적인 보스’도 첫 방송(1월 16일)에서 여주인공의 건물 투신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훼손된 피투성이의 신체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 보는 이들에게 혐오감과 불안감을 안기고도 남았다. 이 드라마는 15세 이상이 시청 가능했다. 이 장면 역시 시청자 민원이 제기됐고 ‘자살의 직접적 묘사를 피하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방송심의 규정 38조 2항 위반에 해당돼 ‘의견 제시’의 제재 조치를 받았다.

시청률을 높이려 드라마에 폭력 장면이나 막장 스토리 등 선정적 내용을 마구 삽입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그동안 적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무분별한 생명 경시에 대해선 왜 이리 무던한가. 다양한 자살 시도와 방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청소년 모방자살(베르테르 효과) 우려 등 문제의 심각성이 큰데도 말이다. 창작이나 표현의 자유로 포장된 이런 생명 경시는 시청률에 목매는 종편과 지상파 방송, 사극 등 장르를 막론하고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유현재 교수와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가 교육부 의뢰로 2015년 8월∼2016년 8월 밤 9∼12시 방송된 지상파 드라마 70개를 모니터링했더니 48개(68.5%)에서 총 110회의 자살 장면이 등장했다고 한다. 자살 장면 중 76%(84건)는 자살 상황과 방법에 대해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었다. 드라마 속 자살자의 연령대는 성인이 83%(93명)였지만 청소년도 14%(16명)나 등장했다니 제작진의 인식 수준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살과 함께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흡연 장면의 경우 현재 안방에서 거의 사라졌다.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틀어줄 때는 모자이크 처리된다. 이는 무차별적인 흡연장면 노출이 청소년에게 모방 심리를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고려한 조치였다.

흡연과 마찬가지로 자살의 사회적 폐해는 크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수년째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청소년에게 영향력 큰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살을 가벼운 흥밋거리나 에피소드로 활용하는 것은 심각하게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드라마에서 유명 연예인에 의한 자살 장면이 반복해 등장하는 것은 매일 매일 베르테르 효과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꼴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시청자들이 자살 장면에 많이 노출될수록 자살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드라마 제작 시 작가나 PD가 고려할 수 있는 ‘생명존중 가이드라인’ 마련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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