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이흥우] 5월 9일 이후 기사의 사진
이제 28일 남았다. 대통령 부재의 비정상을 해소하려면 아직 이만큼의 인내가 더 필요하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의 고비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법 테두리 내에서 평화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했다는 증표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보다 어렵다던 기적을 마침내 우리 국민들이 만들었다.

그 결과 미증유의 경험을 또 하나 하게 됐다. 조기 대선이다. 예정보다 7개월 일찍 다가온 선거로 유권자는 혼란스럽다. 여당 (출신) 후보가 맥을 못 추는 지금까지의 선거구도 또한 생소하기 그지없다. 여러 면에서 이번 선거는 이전 선거들과 양상이 판이하다. 여론조사에서 야당 후보들이 1, 2위를 다투는 것도 그렇고, 역대 선거에서 맹위를 떨치던 지역대결 조짐도 아직까진 잠잠하다. 87년 체제 이후 특정 정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영호남에서 동시에 최다 득표를 하는 초유의 후보가 나올 수도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2위 후보가 이렇게 자주 바뀐 경우도 없었다. 반기문, 황교안, 안희정을 거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위 자리를 꿰차더니 급기야 안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앞서는 여론조사도 여럿 나오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문재인 대세론이 꺾인 건 분명하다. 안 후보의 가파른 지지율 상승은 안희정 지지표를 가장 많이 흡수한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방황하던 중도·보수층이 안 후보로 귀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 이면에 ‘문재인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은 싫은데 홍준표·유승민은 미덥지 못하니 안 후보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반사이익인 셈이다. 따라서 안 후보 지지층은 충성도가 약하고, 사소한 일에도 지지자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흔히들 이번 대선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정권교체는 확실하고, 누구에 의한 정권교체냐는 문제만 남은 듯하다. 문 후보가 ‘정권교체’를, 안 후보가 ‘더 좋은 정권교체’를 선거 모토로 내세운 이유다.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통합, 정의, 공정이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기호순) 후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후보수락연설문에서 이 세 가지를 핵심 과제로 꼽았다. 보수·진보 구분 없이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만큼 박근혜정부가 국민통합에 역행했고,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 ‘3D’를 “삼디”로 읽든, “스리디”로 읽든 그건 중요치 않다. 대통령의 철학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하나둘 밝혀지는 중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탓만은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절대왕정시대에도 연산 같은 혼군(昏君)도 있었지만 세종 같은 성군도 많이 있었다.

제도의 불비는 운영의 묘로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다.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박근혜정부에서 적나라하게 노정된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사회의 치부와 모순을 뿌리 뽑고 바로잡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함은 불문가지다.

다음 달 9일 선출되는 19대 대통령은 6공화국 마지막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7공화국의 새 시대를 여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 일의 적임자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건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유권자가 경계해야 할 대상 1호는 프레임의 덫이다. 이 덫에 갇히는 순간 5월 9일 이후 또 후회하게 된다. 가뜩이나 가짜뉴스가 판치는 요즘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겸 정치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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