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냉정 기사의 사진
제임스 오르빈스키(57)라는 캐나다 의사가 있다. 1999년 ‘국경없는 의사회’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회장 자격으로 수상한 인물이다. 그는 94년 르완다 대학살 현장에 있었다. 인류가 경험한 최악의 대학살 현장에서 사상자들을 돌보기 위해 조그만 적십자병원을 운영했다. “부상자가 넘치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몰려들었다. 그들의 이마에 1(즉시 치료) 2(24시간 내 치료) 3(치료 불가능)이라고 표기한 테이프를 붙였다. 3이 붙은 사람들은 응급실 맞은편 야트막한 언덕에 옮겨 편안한 상태에서 숨을 거두도록 했다. 담요를 덮어주고 모르핀을 최대 투여했다. 1은 응급실이나 근처 병원 입구로 옮겼고, 2는 1 뒤에서 기다리게 했다.”(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참혹한 현장에서 책임자인 의사 오르빈스키는 판단과 결정을 했다. 그의 선택에 따라 부상자들의 운명은 갈릴 수 있다. 누구를 구하고 누구를 죽게 내버려둘 것인가. 그가 등급을 나누는 판단과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선택 자체를 포기했다면, 들어오는 순서대로 ‘착하게’ 치료만 했다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최악의 사태로 치달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냉정함이 최선의 선택을 가능케 했다.

국어사전에 냉정(冷靜)은 ‘생각이나 행동이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침착하다’라고 설명돼 있다. 따뜻함이 없거나 정겹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단어다. 그렇지만 남을 돕는다는 선의만 갖고 무턱대고 행동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가 있다. 어쩌면 더 좋게 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4월 위기설이 불거졌다. 한반도 운명을 당사자는 소외된 채 덩치 큰 나라들끼리 흥정하듯 이리저리 모는 듯한 현실이 영 불편하다. 패가 갈려 싸움이나 하며 미·중·일·러에 애걸했던 구한말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지경까지 된 게 우리 생각이, 우리 정치가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해 그런 건 아닌가.

글=김명호 수석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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