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대구전쟁 기사의 사진
과거 냉전시대 아이슬란드는 영국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과 세 차례 싸워 모두 승리한다. 바로 대구전쟁(the cod wars)이다.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힘 좀 있다고 못되게 구는 이웃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다.

1972년 9월 아이슬란드 정부는 50해리 배타적 어업수역을 선포했다. 1950년대 영국과의 갈등 끝에 12해리를 인정받은 경험을 살려 대구를 대형 어선으로 싹쓸이하는 영국의 접근을 막은 것이다. 영국은 극심하게 반발했다. 선단을 조직해 아이슬란드가 선포한 50해리 수역을 일부러 침범했다. 독일도 자국의 어업권을 보호한다며 동조했다. 아이슬란드 해안경비정이 트롤어선의 그물을 잘라내자 영국은 힘 좋은 예인선으로 경비정을 들이받았다. 경비정이 위협사격을 시작하자 영국은 전함을 보내 전쟁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는 ‘지정학’이라는 탁월한 무기가 있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영국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를 언급했다. 냉전이 한창인 때 나토 탈퇴는 구소련과의 협력을 의미했다. 붉은 군대의 주력인 발틱함대가 아이슬란드에 기지를 건설하고 유럽 앞바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질문을 던졌다.

결국 미국과 나토가 중재에 나선 끝에 1976년 6월 아이슬란드는 200해리 배타적 어업수역을 인정받고 영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일방적인 승리였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꺽은 뒤 나폴레옹에게도, 히틀러에게도 패배하지 않았던 ‘로열 네이비’는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물론 지정학적으로 유리하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아이슬란드의 승리에는 국가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다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됐다. 지정학적 장점으로 말하자면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할 문제다.

고승욱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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