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제보자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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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래전부터 제보자였다고 말했다. 즐겨 택하던 수단은 대학교 정문 앞 공중전화였다. “여보세요, 신문사죠? 이런 건 취재 안 합니까? 체대 교수가 학생 상금을 가로챈단 말입니다.” 그의 대학 지도교수는 그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해 상금을 받으면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한다. 상금이 학생 부모의 계좌로 입금된 때에도 돈을 꺼내 가져오라던 교수들이 있었다. 그렇게 제보를 해도 언론사나 수사 당국이 매번 찾아오진 않더라고, 옛 금메달리스트가 잔을 내려놓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선배에게 ‘빠따’를 맞을 때, 교수가 돈을 빼앗아갈 때, 상대의 칼이 그를 겨눌 때 짙어진 생각이었을까. 그는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게 있더라”고 말했다. 그가 운동을 관뒀지만 제보자 DNA는 남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 여전히 많아 보였다. 국정농단 사태를 폭로한 뒤 그에게는 펜싱 칼보다 더 날카로운 설도(舌刀)들이 향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고영태씨는 “어느 조직에서 무얼 할 수 있겠나, 포장마차나 해야 할 듯하다”고 답했다. 녹음하고 제보하지 않을까 누구든 불안해할 거란 얘기였다.

그와 헤어지고 나니 내게도 공중전화로 제보가 왔던 경험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듯, 숨이 거칠고 목소리는 가까웠다 멀어지곤 했다. 규칙적으로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다급한 목소리를 뚫고 나왔다. 경인고속도로 옆에 있는 어느 회사가 기업사냥꾼의 ‘작전’으로 망가졌다고 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저는 나쁜 사람을 돕던 사람입니다.” 내가 자꾸 되묻자 그는 “목소릴 들어보니 아직 젊은 듯한데, 어른들 세계를 영 모른다”고 했다.

발신인을 끝내 알 수 없던 공중전화 통화는 추후 신문기사가 될 수 있었다. 세상이 조용하기만 하다던 수사 당국도, 절반쯤을 알고 묻는 질문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물코가 삼천이면 걸릴 날이 있다더니 생각하며, 제보가 내게 닿은 일을 속으로 우쭐거렸다. 혼자 애면글면하는 것보다 기대 않던 제보 하나가 훨씬 강력한 법이었다. 누굴 만나면 어느 문건을 볼 수 있다는 이메일을 받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이 이 기자, 이건 누가 버린 종이인데….” 남의 지갑보다 편지봉투를 여는 게 더욱 짜릿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제보자가 주위에 많을 때엔 기자생활을 퍽 잘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제보라는 게 매번 달콤할 수는 없었다. 품을 들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선배들처럼 잘 가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다르다는 단순한 사실도 고생을 해본 뒤에야 깨달았다. 인사동 어느 화랑의 주인이 “보신각 종이 사실 다 깨져 있다”고 말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가 홍범도 독립군의 미발표 군가가 있다며 무릎을 치며 불러 보였는데, 그걸 또 받아 적고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 모든 언론사가 다룬 강력범죄를 모르고 지나갔다.

“알아봤어요? 그놈이 뭐라던가요?” 경우에 따라서는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제보자들도 있었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가 큰 비리를 저질렀다 해서 황급히 찾아가 봤더니 사람들이 많았다. 제보자가 날 가리키며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는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투자자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들인 시간이 아까워 어떻게든 기사를 써 보려 애쓰기도 했다. 포기 못하는 게으름을 제보자와의 의리로 착각했다 소송 문턱에서 정신 차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때로는 제보를 받고도 제보인 줄 몰랐다. 지나고 나면 현자가 되는 세상을 비웃었지만 정작 비웃음을 사야 할 건 나였다. 국정농단의 주역이 망가뜨렸다는 한 체육단체를 찾아 호들갑을 떨었더니 관계자가 “지난해에 서명운동까지 벌였다”고 말했다. 지연된 정의를 뒤적이는 꼴이 우습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며칠 뒤 누군가의 말을 메모해둔 걸 보니 “이 정권 중에는 세월호가 인양되지 못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 배가 올라왔는데, 내가 아무 말 못하는 게 마땅하다.

인생이 결국 취재와 기사 쓰기라면 가장 큰 제보자는 나 자신일 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오던 날, 그가 26년 전 “돈 1억원을 받고 쇠고랑 차는 사람을 본다”고 쓴 일기를 기사에 인용했다.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과를 마치는데 아차 싶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습 시절 기자수첩을 꺼냈다. 맨 앞 장에 ‘가난한 자의 벗, 슬퍼하는 자의 새 소망이 되자’고 적혀 있었다. 조세희 책을 읽으며 막연히 기자를 꿈꾼 순간이 내게 있었다. 제보를 받고도, 제보인 줄 몰랐다.

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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