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취미가 예술이 되고, 일상이 미술이 됐네” 기사의 사진
북서울시립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에 초대된 진기종의 ‘매치 더 해치’. 플라이낚시 도구들을 전시했다. 북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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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집벽처럼 모았던 온갖 모양의 알록달록한 핸드폰 액세서리. 박미나 작가는 무려 10년간 수집했던 이 액세서리로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액세서리는 당시 유행했던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이기도 했고, 교통카드나 USB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대중문화 변천사를 보여주는 압축판이다(북서울시립미술관 ‘덕후 프로젝트’).

#2. 분홍색 헤어롤 놋수저 등이 조각 작품처럼 유리 상자 안에 들어 있다. 머리 손질할 때, 밥 먹을 때 쓰는 도구다. 이걸 작품처럼 낯설게 보니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헤어롤, 부의 세습을 뜻하는 ‘금수저’ 등 사회의 이슈가 환기된다. 길거리 껌딱지 자국, 아스팔트 땜빵 자국, 페인트가 뜯겨나간 횡단보도의 흰줄은 확대해 캔버스에 옮겨오니 추상화가 됐다(금호미술관 ‘윤동천 개인전:일상의’).

취미가 예술이 되고, 일상이 미술이 됐다. 사소하게 여기기 쉬운 취미나 평범한 물건을 예술로 끌어들인 두 전시가 눈길을 끈다. 서울 노원구 북서울시립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의 기획초대전 ‘윤동천 개인전: 일상의(Ordinary)’가 그것이다.

덕후 프로젝트는 ‘덕후’를 주제로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기질이나 자세, 행동 양식의 의미를 조명한다. 덕후 문화를 ‘몰입’이라는 교육적 가치와 연결해 살펴보고자 하는 기획이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를 누리꾼들이 유사한 발음인 ‘오덕후’로 바꾸어 부르며 생겨난 줄임말. 일본에선 하위문화에 몰입하는 이들을 별종처럼 여기는 의미로 출발했다면 한국에서는 ‘학위 없는 전문가’ 등 긍정적 뉘앙스를 가지게 됐다.

신창용 신기종 고성배 김성재 등 젊은 작가 11명이 초대됐다. 피규어 수집이 취미인 김성재는 그동안 모은 방대한 피규어의 일부분과 자신이 직접 만든 피규어를 함께 선보인다. 진기종은 플라이 낚시가 취미다. 낚싯대, 직접 만든 떡밥, 지도 등 취미를 즐기기 위한 물건 자체를 진열했다. 신창용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과 코엔 형제의 ‘파고’의 특정 장면을 재해석한 회화를 내놓았다. 7월 9일까지(02-2124-8928).

서울대 서양화과 윤동천(60) 교수는 일상의 물건 혹은 일상의 언어 등을 설치작품 회화로 변용시켰다. 구겨진 보자기를 그려 넣고는 ‘양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딱 봐도 구겨진 양심이 오버랩 되는 작품이다. 이처럼 전시에는 사회비판과 풍자가 넘쳐난다. 이를테면 반짝거리는 재질의 천에 ‘염병하네’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작품 제목 ‘빛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특별검사팀이 입주한 사무실에서 국정농단 주인공 최순실에게 여성 청소 노동자가 외친 이 육두문자는 일약 핫한 단어가 됐다.

‘위대한 퍼포먼스’ 시리즈는 사회운동가인 고(故)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등 역사적 사건을 담은 사진을 확대한 것이다. 촛불집회는 사진이 아니라 일일이 붓으로 망점을 찍어 회화로 표현했다.

압권은 세월호 리본이다. 여느 전시장에서 갖추기 힘든 6.5m 높은 벽 한가운데 노란색 리본 하나가 그야말로 장엄하게 걸려 있다. 한 벽에서 종소리가 경종을 울리듯 쨍그랑거리는데, 애도와 사회적 치유의 공간이다. 5월 14일까지(02-720-5114).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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