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범죄] 아기는 부모가 버렸는데, 왜 엄마만 처벌 받나요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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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유기 범죄 책임에 ‘아빠’는 비켜서 있다.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 이후, 갓난아이를 혼자 떠맡게 된 ‘엄마’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아이를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범죄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친부에게는 책임을 물을 법적·제도적 장치는 없다.

영아유기 피의자, 여성이 4배나 많아

국민일보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아유기 1심 판결문 69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이 기소된 건은 50건이었다. 남성이 함께 기소되거나 남성만 기소된 건은 16건이었다. 친부가 아이를 직접 버리거나 버리는 데 도움을 준 경우였다.

경찰 통계에서도 이는 극명히 나타난다. 최근 5년간 영아유기 피의자로 입건된 여성은 233명, 남성은 58명이었다. 남녀 간의 격차가 4배가 넘는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황에서 여성이 더욱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행법상 영아유기는 직접 아이를 버린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서만 형사처벌을 내릴 수 있다. 친부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지만 도움을 거절당해 아이를 유기했을 때도 친부는 형사상 책임이 없다. 아이를 버린 친모만 처벌 대상이 된다.

박영미 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영아유기 범죄에 남성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대표는 “아이를 유기한 엄마가 이전에 친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외면했다면 친부도 방조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며 “아이를 낳는 건 여성이 결정하더라도 양육에 관해서는 남성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연락이 두절됐다”

갓난아이를 버리는 친모는 법적 처벌을 받는 동시에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기까지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여성들의 편지에는 이런 사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기 아빠는 아기가 태어나기 3주 전에 도망갔다’ ‘남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알고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현준(가명)이 아빠가 현준이를 모른 척하고 떠나 혼자 키울 수 없어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 등 친부가 아이를 외면해 홀로 아이를 떠맡게 된 사연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아유기 범죄를 저질러 재판에 넘겨진 여성 대다수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과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등 여러 상황을 참작한 법 정서가 반영된다.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친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월 경기 이천시의 자택에서 아이를 낳은 뒤 방치해 숨지게 한 A씨가 그랬다. A씨는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 자신의 방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바지와 속옷을 입은 채였다. A씨는 그 상태로 다리와 바지 사이에 아이를 방치했다. 아이는 약 20분 만에 숨졌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A씨는 임신 후 아이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비난이 두려워 가족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혼자서 출산을 하게 됐다”며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양육비 청구 등 경제적 지원도 복잡

친부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원칙적으로는 경제적 책임을 지울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양육비를 받아내는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선 미혼모가 직접 친부를 찾아 양육비를 청구해야 한다. 이때 친부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친부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는데도 주지 않으면 또 이행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2014년 여성가족부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신설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미혼모들이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액의 긴급지원금도 지급한다. 그러나 이는 법적 지원에 그치는 수준이어서 친부에게 양육비를 강제하는 수단은 되지 못한다.

최형숙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해외처럼 구상권을 청구하고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등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남성들에 대해 강제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의 경우 미혼모가 아기를 낳을 경우 세무서에서 친부를 추적한다. 친부로부터 세금을 걷어 아이수당을 지급하기 위해서다. 또 노르웨이, 핀란드 등도 양육비를 친부가 지급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우선 지급한다. 그 후에 친부가 갚도록 구상권을 청구하고 있다. 호주나 미국, 영국 등은 여권 발급 불허, 운전면허 취소 등 강력한 행정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글=이가현 최예슬 기자 hyun@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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