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국정 준비팀 제대로 가동해야 기사의 사진
갓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누구나 대통령이란 직업에 관한 한 초보자다. 그런데 다른 직업의 초보자에겐 연수기간도 있고 처음의 서투름도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초보 대통령은 그런 관용을 기대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공동체를 조화롭게 운영해야 할 의무는 너무 무거워서 하루라도 연습을 용납하지 않는다. 대통령직에 오르자마자 마치 수십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잘 해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 되는 사람에게 부여된 소명이자 숙명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 위한 분투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지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경세가들이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987년 체제 이후 여섯 번의 대통령 가운데 집권 이후 계획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실행에 옮긴 대통령을 찾긴 쉽지 않다. 그나마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 초기 프로그램을 미리 기획해 금융실명제 등을 성공시킨 예가 눈에 띌 뿐이다. 대부분 인수위에서 허겁지겁 인사, 정책, 외교 등에 대한 안을 마련하지만 곳곳에 허술함이 있어 집권 초기부터 고전하곤 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그 인수위조차 없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벌어질 상황이 약간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당장 대통령은 있는데 청와대는 비어 있다. 현재의 양강이 모두 정권을 탄핵한 대통령인데 그 대통령이 어떻게 박근혜정권의 비서진과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할까. 청와대를 채우는 데도 검증기간을 고려하면 최소 2주 이상이 필요하다. 연정 논의 등으로 장관 임명이 늦어지면 청문회 통과까지 한 달이 훌쩍 넘을 수도 있다. 6개월가량 공백이 있는 국가 리더십을 바로 세울 사안은 외교안보를 비롯해 촌각을 다투는 것들이다. 이를 위해 누가 손발이 돼줄 것인가.

집권 초 한 달은 대통령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기간이다. 이 기간 국민은 감동받을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높아진 주권 의식을 감안할 때 대통령이 허둥대면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도 순식간이 될 터이다. 취임사를 비롯해 국민을 감동시킬 대통령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초기 국정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누가 되든 소수당인데 협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급박해진 한반도 정세를 풀 수 있는 희망을 줄 전략은 무엇인가. 초기 대통령의 성패는 대통령의 의제 설정 능력과 소통 능력, 이른바 대통령의 정체성(President Identity)을 확고히 만드는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결과는 이어지는 ‘대통령의 시간’이 어떤 빛깔일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준비는 지금 바로 해야 한다. 당선되고 나면 늦다(지금도 매우 늦었다). 준비 없이 잘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해 후보들이 생각은 굴뚝같아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선거가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상황이라 그 이후를 숙고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선거가 치열할수록 더 그렇다. 1등을 다투는 후보들이 아닌 경우에는 동기도 부족하다.

특히 예민한 사안인 인사 준비가 가장 녹록지 않다. 사전 검증 등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새어나가면 자중지란이 일어나거나 공격을 받을까 우려해서 미뤄두기 십상이다. 하지만 인수위라는 최소한의 시간도 없는 이번에는 어렵더라도 선거기간에 인사 준비까지 함께 안 할 수 없다. 주요 포스트인 장관과 수석 대상자를 미리 발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이것은 선거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 후한 평가가 기대되는 인사와 후보가 선호하는 인사는 다를 수 있다. 섀도 캐비닛을 구성할 경우 친위부대 중심의 인사는 하기 어렵다. 탕평과 포용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리 발표해서 리더십 검증을 받게 하는 것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선거에 당선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면 이후를 준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시급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이를 안 한다면 그 또한 리더의 자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주요 대통령 후보는 국정에 대한 통찰력과 경험이 있고, 후보의 철학과 비전을 잘 녹일 수 있는 사람을 팀장으로 선임해서 바로 ‘국정준비팀’을 만들어야 한다. 시늉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후보가 직접 챙겨야 한다. 공개해도 무방하다. 인수위가 없는 상황을 국민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선 이후를 잘 준비하는 후보라는 인식은 거꾸로 선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력 후보들은 말로만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라 행동으로 준비된 대통령임을 보여줘야 한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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