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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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 있다. “성공해야 한다!” 이 명제는 20세기 한국인의 삶과 의식을 지배한 절대적인 지상 명령이다. 이때 성공이란 곧 입신출세와 치부를 의미했고 거기엔 응당 피나는 공부와 노력에 대한 요구가 뒤따랐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렇게 성공의 꿈을 내면화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당위를 좇으며 살았다. 성공은 대중의 의식을 지배한 대중적 욕망의 코드이자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성공해야 한다는 그 지상 명령이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걸 뜻하진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한국의 교육은 성공의 꿈을 부추기는 한편 그 성공이 정직한 노력과 도덕적으로 정당한 방법에 의해 성취되어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장려된 일종의 도덕주의적 삶의 규율이다. “정직하게 살아라”라는 어른들의 지당하신 말씀에 집약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 둘의 행복한 조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은 끊임없이 배반당했고 성공주의와 도덕주의를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실패하고 좌절했다. 정직과 신의를 강조하는 도덕주의는 성공을 오히려 불가능하게 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치스러운 요구로 취급됐다. 성공의 지표인 돈과 권력을 거머쥐는 것은 오히려 비도덕적인 부정과 부패를 통해서만 가능했고 한국 자본주의의 오랜 역사가 이를 증명했다. 1969년에 발표된 손창섭의 장편소설 ‘길’이 문제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즉 한국사회에서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길’에서 작가 손창섭이 던지는 비판적 질문이다.

손창섭은 1950년대 전후문학의 대표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1950년대에는 전쟁 직후의 허무와 폐허의식을 동물 같은 삶을 연명하는 퇴행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주로 그렸다. 그래서 그의 소설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비판하는 평론가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자극받았는지 손창섭은 1958년에 처음으로 긍정적인 인간형을 등장시킨 단편 ‘잉여인간’을 발표하고, 평론가들은 그의 변화를 환영하며 이듬해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준다. 지금도 ‘잉여인간’은 그의 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되지만, 문제는 희망과 긍정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이 작품성을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볼 때 ‘잉여인간’의 작품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 대한 모멸과 환멸을 주제로 한 이전의 소설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후 1960년대에 들어와서 그는 신문연재소설 집필에 집중하는데, ‘길’이 그중 하나다. 이 작품에도 어김없이 긍정적인 인간형이 등장하지만 여기에서 긍정과 낙관은 결국은 환멸로 귀결된다. 이 소설은 비록 손창섭의 초기 단편소설들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으나 당시 평론가 백낙청이 “1960년대의 가장 훌륭한 신문소설의 하나”(‘시민문학론’)로 고평했을 정도로 문학적 의미는 작지 않다.

손창섭은 ‘동아일보’에 이 소설의 연재를 예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부정, 부패, 음모, 타락이 잡초처럼 무성한 대도시의 추잡한 현실 속에다 아직 때가 끼지 아니한 시골의 순박한 소년소녀를 집어던져 그 반응을 시험해보고 싶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16세의 순박한 시골 소년 성칠의 눈에 비친 타락한 서울의 세태를 파헤친다. 성공하기 위해 상경해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 애쓰다가 결국 타락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아무 소득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성칠의 사연이 소설의 골격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칠의 순진한 기대와 믿음이 어떻게 무너져가는가를 추적하면서 1960년대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성공의 로망스’가 갖는 허구성을 폭로한다.

성공의 로망스란 무엇인가? 1960년대는 근대화가 본격화되면서 ‘잘 살고 싶다’는 대중적 욕망이 급격하게 분출하던 시대였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이 대중들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그러한 대중들의 욕망이 집약된 단어가 바로 ‘성공’이다. 이 시기에 성공은 모두의 꿈이었고 쉬 손에 잡힐 것도 같은 가능한 목표였다. 이를 더욱 부추긴 건 당시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던 놀라운 성공 실화였다. 가난하고 못 배운 시골 청년이 빈손으로 시골에서 올라와 돈을 많이 벌어 성공했다는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신문에서 앞다퉈 소개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성공 스토리는 대중문화에서도 즐겨 다루던 소재였는데, 1963년에 개봉한 영화 ‘또순이’가 대표적이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타이어 장사, 밀수품 장사, 짐 나르기 등 온갖 힘든 일을 다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새나라 자동차’를 살 정도로 성공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들은 성공에 대한 대중의 꿈과 희망이 집약되어 있는 삶의 서사였는데, 그 서사가 바로 ‘성공의 로망스’다. 대중적 욕망과 가치, 삶에 대한 기준과 신념 등이 투영되어 있는 이 성공의 로망스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하나의 신화다. 그 신화는 또한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국민들을 일체화, 집단화하는 개발주의의 동원 논리를 감성적으로 뒷받침한 것이기도 했다.

주인공 성칠은 이 성공의 로망스를 신봉하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성칠은 오직 돈을 벌어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여관 청소부, 공장 직공, 남자식모, 구두닦이, 대금업, 과일행상 등 온갖 궂은 직업을 전전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그를 온통 사로잡는 건 “어떻게 하면 조속히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고 이때 성공이란 오로지 “돈을 버는 일, 부자가 되는 길”이다. 손창섭의 ‘길’은 그러한 성칠을 현실 속에 던져놓고 저 성공의 로망스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아닌지를 실험하고 관찰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성칠은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의 성공담을 듣고 고무돼 그들의 행로를 하나씩 똑같이 모방한다. 기술을 배워 성공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기술을 배우려고 공장에 취직하고, 공장을 그만둔 뒤엔 구두닦이로 돈을 모아 농장을 차렸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구두닦이를 시작한다. 그가 이자놀이와 과일행상에 나서게 되는 동기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공의 로망스를 자기 삶의 서사로 완성하기 위한 성칠의 노력은 결국 실패한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칠의 성격이 중요한 원인이다. 그는 나이가 어림에도 “사람이란 나쁜 짓을 해서는 못쓰는 거야. 바르게 살아야 해”라는 도덕주의를 끝까지 고수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만 타락한 현실은 그의 선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가 경험한 것은 온갖 사기와 협잡, 불의와 부정, 부패와 술수였으며, 모두가 다 그렇게 돈을 벌고 있고 또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로지 성공만이 지고의 가치가 아닐 수 있음을 조금씩 깨우쳐간다. 작가는 그렇게 성공의 로망스를 모방하는 성칠의 실패와 좌절을 통해 그럴듯한 성공의 신화에 가려져 있는 당대 한국 자본주의의 타락상을 폭로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작가는 성칠이 정신적 감화를 받는 긍정적 인물인 신명약국 주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그리구 돈을 어떻게 단시일에 많이 버느냐를 욕심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당하고 깨끗하게 벌어서 알뜰히 아껴 쓸까를 생각해야 하는 거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속담에 대한 그릇된 해석은 한국인을 부정과 부패로 몰아넣고 있는 거다. 너는 돈벌레가 되어선 안 된다.”

이러한 경제 윤리는 소설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금욕주의와 도덕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러한 생각은 비록 소박한 수준이지만 막스 베버의 경제윤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성칠의 좌절을 통해 베버식의 근면의 윤리와 도덕주의에 기초한 ‘정당한 성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타락한 한국의 현실에서 성공주의와 도덕주의는 결코 화해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물론 이 소설의 메시지는 소박한 도덕교과서의 한계를 시원하게 넘어서진 못한다. 그것은 작가의 인식의 한계일 테지만 대중의 눈높이를 고려해야 하는 신문소설로서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196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박정희식 개발 동원 체제에 대한 소박하지만 강력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이것은 1969년에 작가 손창섭이 던졌던 질문이지만 오늘 날 한국의 젊은이들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의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성공에 실패한 성칠은 결국 환멸만을 안은 채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손창섭은 1970년대 초반 박정희 군사정권 치하 한국의 현실에 절망하고 일본으로 이주해 살아가다 귀화해 쓸쓸한 생을 마쳤다. 손창섭은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버린 ‘헬조선’ 탈출의 선구자다.

<문학평론가 김영찬>

손창섭은

평양의 가난한 집안 출신… 1949년 처음 소설 연재


작가 손창섭(1922∼2010)은 1922년 평안남도 평양의 가난한 집안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집을 떠난 그는 1935년 만주를 거쳐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와 도쿄에서 고학하며 간신히 니혼대학에 들어갔지만 중퇴하고 말았다.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8년 월남했다. 그 후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원 등을 전전하다가 1949년 연합신문에 단편소설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52∼1953년에 ‘문예’지에 단편소설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이 추천을 받으면서 활발한 작가생활을 이어갔다.

손창섭의 소설은 전후 비참한 현실을 자전적 체험 위에서 적나라하게 그렸다. 특히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최소한의 의식주 해결조차 어려운 최저계층이다. 막연한 분노와 무기력, 깊은 체념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았다. 이런 깊은 우울감과 절망감은 그의 소설 전반에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는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상을 받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1976∼1977년 한국일보를 통해 장편소설 ‘유맹’과 ‘봉술랑’을 연재하였으나, 이후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 후 아내와 함께 도쿄에서 거주해 오다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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