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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기호] 금연운동, 좀 더 사려 깊게

흡연자의 증오를 부추기는 담뱃갑 사진… 의학적 접근만으론 금연효과 달성못해

[청사초롱-이기호] 금연운동, 좀 더 사려 깊게 기사의 사진
KTX를 이용해 서울에 도착할 때마다 역 광장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운 후 다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그때마다 홀로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곤 한다. 다름 아닌 함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때문이다. 역 광장 한편에 마련된 작은 휴지통을 중심으로 적을 땐 오십 명, 많을 땐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성인 남녀가 둥글게 원을 그린 채 말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우리나라 흡연인구 비율 20%라는 수치가, 그게 말짱 다 거짓말처럼 느껴지곤 한다.(서울역 흡연 부스도, 고속버스터미널 입구도 모두 마찬가지다.)

흡연 인구 통계를 무슨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처럼 유무선 전화 방식으로 했을 리 만무하고 아마도 보건소에서 건강조사지 방식으로 했을 게 뻔하다. 나만 하더라도 하루 열다섯 번씩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일을 반복하는지라(말하자면 아침엔 흡연자, 저녁엔 비흡연자 하는 식) 통계의 오류나 굴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런 의구심은 아마도 내가 흡연자로서 겪은 이런저런 박해와 핍박, 구별 짓기의 경험으로 인해 생긴 삐딱한 시선 탓일 텐데, 한편으론 그만큼 우리 사회의 금연운동이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

담뱃값 인상 문제는 이미 여러 사람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라서 생략한다고 해도 담뱃갑 상단에 배치된 혐오 사진과 문구에 대해선 할 말이 좀 남아 있다. 우선 구강암 환자나 후두암 환자, 발기부전을 암시하는 사진을 넣은 부분. 나는 이 사진들이 금연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나 사람들의 문제접근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오직 의학적 측면에서만 그 모든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사진에 나온 사람처럼 되지 않으려면 끊으라는 말씀. 그런 관점에서 따지자면 곱창도 끊고 소주도 끊고 초콜릿도 끊고 우리 막내가 즐겨 먹는 젤리도 모두 끊어야 할 테지만 세상 모든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 안에 여러 다른 사정이 숨어 있을 텐데 그것을 오직 건강 문제로 환원하여 금연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는 조급함이 느껴진다(사진 속 암환자의 인권침해 문제도 따로 지적하고 싶다).

그다음, 단란한 가족사진을 넣고 가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얼굴을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마구 지워버린 듯한 사진. 그 사진 밑에는 ‘흡연으로 당신의 아이를 홀로 남겨두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한 주인공이 악당에게 내뱉는 말, “가족만큼은 건드리지 마!”라는 대사가 떠오르곤 한다. 의도 자체야 어서 담배를 끊고 좋은 아빠가 되라는 말이겠지만 주위 많은 흡연자의 전언에 따르면 그 사진 때문에 꼭 한 개비 담배를 더 피운다고 한다. 그 사진에서 어떤 증오와 적개, 심지어는 알 수 없는 저주까지 읽어냈기 때문일 텐데, 그런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으로 금연운동을 한다는 것이 나로선 잘 이해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이유 없이 증오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되돌려주겠는가. 증오에는 증오뿐. 지금의 흡연자들과 금연운동 단체 사이에 오가는 것은 오직 그것뿐인 것 같다.

예전 빨치산들은 발각될까 두려움에 떨면서도 단풍잎을 말아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17세기 프랑스 선교사 카르티에는 ‘적에게 담배를 내밀면 그 순간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고 저서에 적어놓았다. 담배 한 개비에 남아 있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그런 맥락을 살피지 않은 채 오직 의학적 측면으로만 금연운동을 전개한다면, 결과는 뻔할 것이다. 조금 더 사려 깊은 접근을 원한다.

이기호(광주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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