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승일 <5> “선생님, 레슨비가 없는데요…” “그냥 해주마”

집안 형편 배려해준 고마우신 선생님… 3개월 레슨 받고 성악과 덜컥 합격

[역경의 열매] 김승일 <5> “선생님, 레슨비가 없는데요…” “그냥 해주마” 기사의 사진
테너 김승일씨가 한양대 음대 재학 중 해군에 입대해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유년시절 클래식보다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더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크게 소리를 질러 대는 ‘소프트 락’(Soft Rock) 장르를 좋아했다. 락가수 김종서를 좋아했다. 밝고 명쾌한 리듬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은 음악과 노래 때문에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이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그 선생님의 권유를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속으로 ‘내가 왜 그 재미없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해야 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울러 교회음악,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로 이렇게 바쁘게 쓰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테이프에 있는 노래나 한곡 듣고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카루소’(Caruso)란 노래를 틀었다.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세상에 이런 음악 장르도 있구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중가요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성함, 설명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탈리아어 가사를 한글로 바꿔 써가며 외우고 맹연습했다. 놀란 사실은 카루소 노래는 매우 높은 음의 영역인데도 내 목소리가 쉽고 거침없이 부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신기했다.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 진로의 기로에 섰다. ‘어릴 때부터 해 온 것이라곤 노래 부르는 것뿐인데. 대학은 준비도 안 했는데….’

대학에서 어느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런 것인가, 아버지 소개로 성악 레슨 선생님을 만났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성악곡을 부르려니 어려웠다. 무엇보다 매회 레슨비 부담이 컸다.

한두 번 레슨을 받은 뒤 선생님께 “이제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 못 올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아 그렇구나. 레슨비는 나중에 가져와도 된다. 당장은 그냥 해 주마.”

그땐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사례비를 받지 않고 레슨을 해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조차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고마우신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께 3개월 동안 성악 레슨을 받았다. 한양대 성악과에 응시했고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 있었다. 합격자 명단을 보고 난 뒤 넓은 운동장을 혼자 좋아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렸다. 한참을 정신없이 몇 바퀴 돌고 난 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도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입학동기들 중에는 비싼 레슨을 수년간 받아왔던 친구, 재수에 삼수까지 한 친구들도 많았다. 나처럼 단 3개월 레슨에 합격한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대학재학 중 해군에 입대해 군악대에 배속됐고 해외공연도 다녔다. 해군군악대가 KBS 열린음악회 ‘호국가요제’란 프로그램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실로 일사천리였다. 그대로 계속 평탄하게 성악가로의 내 인생이 잘 되기만 할 줄 알았다. 내 명성은 가족은 물론 친척, 주위 사람들에게도 점점 높아만 갔다. 다니던 교회에서도 내 노래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프로였고 활동하는 성악가였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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