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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이기수] 의약에도 징벌적 과징금 필요

행정처분 주목되는 글리벡 리베이트 사건… 리베이트 투아웃제 되레 발목 잡을 수 있어

[내일을 열며-이기수] 의약에도 징벌적 과징금 필요 기사의 사진
여기 두 종류의 회사가 있다. A는 특정 암 환자의 90%가 1차 약으로 쓰는 표적항암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 시판하는 다국적 제약사다. B는 A의 약을 복제한 ‘제네릭’을 팔고 있다. 의사와 환자는 A의 오리지널 약을 선호한다. B의 약값이 싸긴 해도 약효가 미덥지 않고, 안전성도 떨어지는 것 같다고 보는 까닭이다.

요즘 리베이트 투아웃제에 걸려 주목받고 있는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꺼낸 예화다. 이 회사는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국내 의사 십수 명에게 리베이트를 두 번 이상 제공한 사실이 확인돼 재판을 받고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과 위장관기질종양(GIST) 치료에 쓰이는 글리벡 등의 판촉을 목적으로 약 25억9000만원 상당을 건넨 혐의다. 평상시 의사들과 친하게 지내야 시장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일까? 아니면 자기네 약을 지고지선(至高至善)으로 여기는 암 환자를 볼모로 삼으면 정부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노바티스의 글리벡 리베이트 사건은 들여다볼수록 국내 의약 시장과 보건 당국의 후진적 민낯이 드러나 참담한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이 사건은 규정에 따라 건강보험 급여 대상 품목(보험약가집)에서 글리벡을 일단 퇴출시키는 것이 합당한 처분 방식이라고 본다. 이른바 ‘리베이트 투아웃 규정’에 딱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리지널 약 쓰기를 고집하는 암 환자 6000여명 때문에 그러기가 힘든 것이 딜레마다. 리베이트 투아웃제란 리베이트로 물의를 빚은 약에 대해 리베이트 액수에 비례해 건강보험 급여를 일정 기간 정지하는 제도다. 같은 약이 5년 이내에 정지 대상에 다시 오르게 되면 가중처벌을 받거나 보험약가집에서 완전히 퇴출당한다. 보험약가집에서 빠지면 해당 약을 쓰는 환자는 약값 부담이 크게 오르게 된다. 예컨대 글리벡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약값이 한 달에 6만5000∼13만원 정도다. 하지만 비(非)급여 대상으로 전락, 보험 혜택을 못 받게 되면 130만∼260만원으로 대폭 인상된다. 글리벡의 경우 리베이트 투아웃 원칙을 사수하기가 쉽지 않게 된 배경이다.

보건복지부는 그간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드러난 노바티스의 41개 품목 중 글리벡을 포함해 대체약이 있는 18개 제품에 대해 급여 정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벌써부터 다른 약은 몰라도 글리벡에 대한 행정처분만큼은 과징금 부과로 대신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놓고 말은 못해도 관련 의사들 역시 여기에 상당수 동조하는 모양새다. 범죄를 저지른 제약사가 밉다고 환자가 그 고통을 떠안게 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해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징벌적 과징금으로 노바티스 측에 급여 정지 못잖은 타격을 주는 방법이다. 징벌적 과징금제란 기업이 고의적으로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 피해자에게 실제 끼친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한 제도다. 막대한 금전적 불이익을 줘 불법행위 재발을 막자는 취지다. 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해행위를 방지하자는 목적도 있다.

“정해진 규정은 가능한 한 지키는 것이 맞다. 리베이트 투아웃제에 해당된다면 아웃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일벌백계가 가능하다. 다만, 징벌적 과징금으로 대신할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혼란을 줄이는 대안일 수도 있겠다. 몇 년 전 비슷한 혐의로 다른 제약사 GSK에 4960억원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해 반면교사로 삼도록 한 중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수도권 모 대학병원 종양내과 중진 교수의 조언이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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