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차기 경제부총리는 파이터여야 기사의 사진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2008년 초 일이다. 청와대 참모였던 A씨는 대선 과정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과 이 대통령의 연루 의혹을 제기한 야당 의원들에 대해 국민통합을 위해 고소·고발을 취하하자고 건의했다. 앙금이 남았던 이 대통령은 거부했다. 몇 차례 건의가 먹혀들지 않자 그는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이 사람아, 앉아봐. 성질도 급하긴” 하며 마지못해 승낙했다.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에는 정치권의 선심성 복지 요구에 대해 ‘포크배럴’(돼지 여물통)이라고 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외국 언론은 포퓰리즘에 맞선 파수꾼이라며 그를 빌려가고 싶다고 했다.

노무현정부 때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B씨는 소주세율 인상과 민간 아파트 분양가 규제를 놓고 청와대와 충돌했다. 소주세율 인상을 추진하던 정부가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없던 일로 했다. 하지만 그는 “맥주세율을 낮추는데 소주세율을 못 올리면 재원 확보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다”며 재추진해야 한다고 했다가 청와대로부터 경고까지 받았다.

이번 대선은 진보쪽 후보 두 명이 접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그러다 보니 덜 ‘좌클릭’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보수의 희망이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성장보다 분배에 방점을 둔 경제정책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양극화가 사회·경제적 갈등을 유발하고 성장을 가로막고 있으니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지속 성장이 어려워졌다.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포용적 성장’이 화두가 되는 시대다.

저성장 늪에 빠진 우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갈 것인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지금은 어설픈 경제철학이나 복지이론을 실험하거나 시계를 과거로 돌릴 때가 아니다. 불평등도 해소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장동력도 찾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유능한 리더가 필요하다.

하지만 두 후보가 내놓는 ‘영혼 없는 공약’들을 보면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갈 것인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양 진영에 장사진을 이루는 경제 관료들 면면을 보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너무 ‘올드’해 산적한 난제들을 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 후보 진영에서는 경제부총리로 국세청장 출신의 L씨가 거론된다. 안 후보 진영은 B씨와 H씨가 공을 들이고 있다.

문 후보 진영에는 장차관급만 70여명에 달하고 폴리페서가 1000명을 넘는다고 하니 그 사람들 한 자리씩 다 챙겨주려면 이 정권이 끝나도 부족할 판이다. 관료나 교수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이라면 행정경험과 경제철학을 전수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낙하산 인사, 정실 인사의 폐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적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박근혜정부의 교수 출신 인사들이나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이 보여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재익 청와대 전 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전권을 위임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경제수장 자리를 논공행상으로 나눠줄 수는 없다. 책상머리 부총리, 실세 부총리, 도로 부총리가 망친 경제는 이 정부로 족하다. 작금의 위기를 헤쳐가려면 대통령과 국회,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파이터가 필요하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오로지 국민과 나라만 바라보는 경제 수장을 앉혀야 한다. 그래야 진보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10여년째 지지부진한 구조개혁을 이뤄 도약할 수 있다. 표에만 눈먼 대선 후보들을 보니 경제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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