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문학의 효시 ‘천로역정’ 문화재 된다

존 버니언이 쓴 기독교 소설 1895년 게일 선교사가 번역

번역 문학의 효시 ‘천로역정’ 문화재 된다 기사의 사진
개화기 번역문학의 효시인 기독교 소설 ‘천로역정(합질·사진)’이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문화재청은 20일 천로역정(합질) 초판본 2종을 비롯해 조선요리제법 초판본,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천주교 진산 성지성당, 서울 옛 서산부인과 병원 등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은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버니언(1628∼1688)의 우의소설로 1678년 초판이 나왔다. 꿈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낸 책으로 ‘크리스천’이라는 남자가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시온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크리스천이 인생의 여정에서 욕망과 싸우며 사탄의 도전 앞에서 거룩함을 이뤄간다는 이야기로 구원과 성화의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는 1895년 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과 부인 깁슨이 공동 번역해 소개했다. 당시 한글로 번역된 ‘텬로력뎡’은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가 읽고 감명을 받음으로써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다. 성결교의 이성봉 목사도 전국을 다니며 천로역정 부흥회를 개최할 정도로 이 책을 높게 평가했다. 이 목사는 ‘멸망의 도시’를 장차 망할 성이란 의미의 ‘장망성’으로 표현했다.

천로역정은 개화기 번역문학의 효시로 국문학사적으로도 당시 한글문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책자다. 현대식 인쇄출판을 통해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데도 일익을 감당했다.

천로역정에는 당대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의 삽화도 수록돼 있다. 기산의 이 그림은 외래종교인 기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토착적인 전통을 반영한 한국 개신교 미술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목판본과 신활자본 등 두 종의 판으로 동시에 발행한 사례는 우리나라 인쇄출판사상 희귀한 경우”라며 “초판본 2종(목판본과 신활자본)을 완본으로 소장하고 있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연세대 학술정보원 소장의 2종 5책을 ‘천로역정(합질)’이라는 명칭으로 등록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 방신영(1890∼1977)이 1917년 저술한 ‘조선요리제법’은 구전으로 이어지던 우리나라 전통 음식의 제조법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요리서다. 옛 서산부인과 병원은 1세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설계했으며 ‘어머니의 자궁’을 모티프로 삼았다. 문화재청은 등록 예고 30일 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장지영 신상목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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