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억원에 가까운 주식을 기부받아 설립된 장학재단에 140억여원의 증여세를 물린 세무 당국의 처분은 부당하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단순히 재산 출연만 따질 게 아니라 기부자가 장학재단의 정관 작성, 이사 선임 등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선의의 기부를 장려하면서도 편법적 제도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게 한 판결”이라고 자평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구원장학재단이 수원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구원장학재단 측의 패소를 판결한 원심을 20일 파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09년 12월 소장이 접수된 지 7년4개월 만이다. 이 소송은 수원교차로 대표 황필상(70)씨와 그의 6촌 동생이 수원교차로 주식 10만8000주(180억원 상당)를 황씨가 과거 설립한 구원장학재단에 2003년 2월 기부한 데서 비롯했다. 수원세무서는 2008년 9월 황씨의 기부를 증여로 보고 가산세를 포함해 140억4193만7000원의 증여세를 부과했고, 재단 측은 소송을 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출연자가 공익법인에 회사 지분의 5%를 초과하는 주식을 기부하면 증여세가 과세된다. 단 출연자들이 주식 발행회사의 최대주주가 아니면 과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황씨 등 출연자들이 과연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인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에서는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1심은 증여세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은 황씨가 재단의 특수관계인이며 재산과 주식을 합치면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가 된다고 봤다.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대법원은 2심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황씨 등이 재단 설립 과정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최대주주로 판정할 수 있는데, 원심이 면밀하게 심리하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황씨가 장학재단에 거액을 기부했다고 해서 바로 특수관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장학재단의 정관 작성이나 이사 선임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최대주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대법원은 이 부분을 살피지 않고 “재산 출연만으로 충분하다”고 결론지은 2심에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애초 황씨는 모교인 아주대에 주식을 기부하려 했지만 아주대가 직접 증여를 꺼리자 2005년 구원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수년간 형편이 어려운 700여명의 학생이 이 장학재단을 통해 수십억원의 장학금을 지급받았다. 수원세무서의 과세 처분은 ‘선의의 기부에 세금폭탄’ 사건으로 다수 언론에 보도됐다.

대법원은 판결 뒤 “공권력의 행사인 과세처분도 조세법률주의와 법치국가적 한계를 준수할 때에만 비로소 승인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김용덕·김소영·박상옥 대법관은 증여세 부과를 정당하다고 본 원심에 문제가 없다는 반대의견을 폈다. 출연 직전 시점 황씨가 최대주주였다면 과세 대상이고, 설립 사후 임원진 장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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