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토론 실종… 문재인, 할당 18분 중 17분 ‘방어’하다 끝 기사의 사진
‘스탠딩 자유토론’ 형식이 처음 도입된 KBS 대선 주자 합동 토론회에서는 ‘프런트 러너(front runner) 신드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런트 러너 신드롬은 ‘선두주자에 대한 후발주자들의 적극적 견제’를 의미한다. 다자 간 자유토론은 각 후보의 ‘정치적 포지션’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1위 주자에게만 과도한 공세가 쏟아진다는 단점도 있어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9일 진행된 토론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18분의 ‘발언총량’ 가운데 16분30초를 다른 후보의 질문에 답하거나 반박하는 데 사용했다. 그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 경쟁 상대에게 질문하는 데 사용한 시간은 각각 30초에 불과했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 피력한 측면도 있지만 대부분 상대 후보의 공세를 방어하는 데 주어진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안 후보 상황도 비슷했다. 그 역시 경쟁 상대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반박에 주어진 시간의 70%가 넘는 13분을 할애했다. 문 후보와 유 후보에게 질문한 시간은 각각 2분과 3분이었다. 유 후보는 문 후보를 몰아세우는 데 10분, 홍 후보와 심 후보도 9분을 문 후보 공략에 썼다. 정책 대결보다는 이념 논란 등 감정적 말싸움만 난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토론회에서는 각 후보의 정치적 입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문 후보를 향한 나머지 후보의 집중 견제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 후보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안 후보는 문 후보를 견제하는 동시에 보수 정당 후보와의 차별점을 드러내야 하는 다중 방정식을 풀어야 했다.

홍 후보는 문 후보와 안 후보를 모두 공격해 ‘보수 적통’을 각인시켜야 하는 상황이고, 유 후보는 문 후보를 ‘불안한 안보’ 프레임에 묶어 보수층을 회심시켜야 한다. 문 후보와 함께 진보 블록에 묶여 있는 심 후보 역시 문 후보의 ‘우클릭 행보’를 지적해야 진보 진영 내 정의당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문 후보 측은 “충분히 예상됐던 상황”이라면서도 다자 간 자유토론에 대한 불쾌한 반응도 숨기지 않았다. 문 후보는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답변 시간을 공평하게 분배해주는 룰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20일 “차라리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지명해 일대일로 토론을 하면 공평하고 제대로 된 검증 토론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토론회의 장단점을 분명히 구분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심 후보와 문 후보가 싸우는 모습이나 홍 후보와 유 후보가 싸우는 모습 등을 보면 과거의 진보·보수 이분법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질문·답변 시간이 부족한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윤종빈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하고 싶은 질문을 다하고, 그에 대한 각 후보의 대응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면접 방식 등 후보 간 질의응답 형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문 후보 측과 안 후보 측은 이날 ‘양자 맞짱토론’을 놓고 장외 힘겨루기를 벌였다. 김철근 국민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문 후보는 맞짱토론에 나서 국민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며 “대통령 탄핵 같은 아픔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2강 후보 간 맞짱토론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박광온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장은 “얼마든지 하겠다”면서도 안 후보 측이 다른 후보들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조건을 달았다. 글=최승욱 김판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