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이정일] 인간 가치는 기술·과학에 우선한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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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3월 전화가, 1887년엔 전기가 조선에 들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것 때문에 흉년이 들었다고 전선을 끊어버렸다. 1899년 경인선 철도가 개통됐다. 시승할 때 구토를 하는 이도 있었다.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보면 형편없는 속도였지만, 그 속도는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속도였다.

에티오피아 사막에 난 오솔길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길이다. 지금도 굶주림과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그 길을 걷는다.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해변으로 몰려가 휴대전화를 흔든다. 이웃 나라 소말리아에서 오는 휴대전화 신호를 받기 위해서이다. 기술은 가난한 난민의 삶도 바꾸고 있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 말은 2016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나왔는데, 곧 세계적 화두로 떠올랐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20년 후, 현재 7세 이하 아이들 중 65%는 지금은 없는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 말은 현재의 일자리를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된다는 뜻이다.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빅데이터가 의사들의 80%를 대체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바이오센서 전문가들은 2024년쯤엔 전 세계 1조개의 센서가 활용되는 덕분에 교통사고가 없어질 거라고 예견한다. 앞으로 기술 발전이 가져올 변화는 엄청나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치른 다섯 번의 대결로 구글은 58조원의 이익을 얻었다.

알파고는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다. 프로기사들은 알파고의 대세관이 탁월했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알파고는 인간과 다른 해석을 한다는 뜻이다. 알파고의 탄생은 ‘인간은 무엇인가’란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엔 철학, 문학이 답했지만 이젠 과학도 답을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진정한 즐거움은 어떤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그것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아이작 아시모프(Issac Asimov)가 한 말이다. 그는 생화학과 교수였지만 SF 소설의 거장이 된 인물이다. 답을 아는 것과 답을 발견하는 것은 다르다. 변화는 더 나은 시각을 준 발견과 통찰의 결과이다. 과학은 그 길을 따라 간다.

변화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요리사, 변호사 같은 직업군을 허물 것이다. 대신 드론, 3D 프린터, 로봇, 증강현실 같은 직업들이 주목받을 것이다. 변화는 직업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재편하고 있기에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적 약자가 될 것이다.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다. 당대 문화를 주도하는 가치, 개념이다. 개인이 그 영향을 피하기는 어렵다. 몇 해 전 애플이 신형 아이패드를 발표했을 때 그것을 사고 싶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장을 매물로 내놓았다. 신장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었던 아이패드는 청년에겐 삶의 목표였다.

인간에게 일은 중요하다. 일은 물질적, 심리적 안정을 준다. 인간은 직업을 통해 사회 속에 주어진 자신의 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직, 실업은 불명예이다. 첨단사업이든 오지탐험이든 열매는 노력한 자에게 돌아간다. 스티브 잡스, 아문젠, 라이트 형제는 실패를 도전으로 읽었다. 이들은 원하는 것을 손에 거머쥐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달콤한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의 기초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나,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더 중요하다. 기술은 삶의 여유나 경제적 부유함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예기치 않은 격랑이 올 때가 있다. 나 자신을 잃은 것 같은 두려운 감정이 밀려들 때 우리는 좌절하기 쉽다.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렸지 감정과 슬픔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연약함이다. 루소는 연약함이 인간을 만들며, 행복은 연약함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인간은 기술을 통해 편함과 자유를 추구하지만 어떤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경고한다. 인간의 불안정성을 외면하는 한 기술은 우리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앞으로 과학은 끊임없이 진보하며 역사를 바꿔갈 것이다. 하지만 새 세상이 와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또 다른 위기를 맞을 것이다. 사과나무를 심은 목적은 큼직한 열매라고 여기지만, 어떤 이는 또 다른 사과나무라고 생각한다. 이 작은 생각의 차이가 삶을 바꾸고 시대를 바꾼다.

글=이정일 동국대 영문과 강사, 삽화=전진이 기자

※이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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