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삭개오의 날개

누가복음 19장 1∼10절

[오늘의 설교] 삭개오의 날개 기사의 사진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몸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지만 가끔 몸에 대한 바람이 생깁니다. 예뻐지고 싶고 살이 빠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예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날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진짜 날개는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날개를 가지려고 하죠. 날개에는 네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그 처음은 ‘내가 날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로, 권력이나 지식으로 자기만의 남다른 것으로 날개를 만들려 합니다. 삭개오도 그랬죠. 키가 작았고 욕심도 많았던 삭개오는 점점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마음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삭개오는 성공하고 싶어 세리장직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뒀고 로마에 납부하고 남은 차액으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과 재산이 그에게 날개였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그를 더 피하고 미워하며 매국노라 욕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날개를 만들어 날아가려는 삭개오의 꿈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습니다.

돈과 명예, 권력으로 스스로 날개를 만드는 사람은 삭개오처럼 절망하기 마련입니다. 삭개오는 성공하면 날개를 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초라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다시 희망을 찾으려 했고 진짜 날개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이 동네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절망에 빠진 삶에 날개가 되어줄 거라 믿었습니다. 삭개오는 마음 속으로 부르짖습니다. “예수님. 날개가 되어주세요.” 날개에 대한 삭개오의 두 번째 생각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망으로 나무 위로 올라갔고 예수님은 삭개오를 알아보고 부르신 뒤 축복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바람대로 날개가 되어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에게 우리의 날개가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예수님이 이미 나의 큰 날개가 되었지만 사업 성공과 자녀 축복 등의 작은 날개도 달라고 보채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시편 3편 5절에는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바로 지난밤 자고 오늘 깨었으니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의 날개가 되셨구나 하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나의 날개가 되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날개에 대한 세 번째 생각입니다. 나의 힘이자 날개 되신 주님에 대한 감사로 하루를 사는 것이 성숙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나의 날개임을 고백하고 살았다는 게 끝이 아닙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빼앗은 것은 네 배 변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머물다 가신 다음날 삭개오는 날개에 대한 네 번째 생각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다른 사람의 날개가 되게 도와주세요.” 이제 삭개오는 다른 이의 날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바로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의 날개가 되려고 힘쓰면 그들이 우리의 날개가 되어 주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해줄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스스로 날개를 만들려는 노력을 멈추고 주님이 우리의 날개가 되어주시기를 기도한 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의 날개가 되어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안홍철 목사(한아봉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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