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조영태] 저출산과 K팝의 정해진 미래 기사의 사진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 출장을 다녀왔다. 필자가 자문관으로 있는 베트남 정부의 인구 및 가족계획국에서 회의가 있었다. 베트남의 합계출산율이 2.1로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데, 앞으로 가족계획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 수준에서 허덕대고 있는 지 10년을 넘었는데, 참으로 부러운 일이었다. 회의 말미에 K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노이에서 가장 큰 경기장에서 K팝 콘서트가 열리는데 회의에 참석한 공무원의 자녀들이 모두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는데 잠시나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트남 국장이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앞으로 10년 뒤에는 K팝이 아니라 V팝이 더 인기일 거라고 한다. 당시에 서로 웃고 지나갔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냥 웃을 일만이 아니었다.

현재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약진하고 있는 K팝은 대규모 기획사가 10대 말에서 20대 초반 연령대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을 양성하며 2000년대 초반부터 크게 성장해 왔다.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의 인구는 아이돌 그룹이 될 수 있는 연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생산해 내는 음반, 음원, 혹은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K팝 산물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10대 말에서 20대 초반의 인구가 K팝의 공급자이자 수요자로서 K팝 산업을 견인해 온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현상이 K팝의 공급 상황도 수요 상황도 그리 녹록지 않게 만들고 있다.

현재 10대 말에서 20대 초반 연령대를 구성하는 인구는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당시 60만∼65만명이 태어났다. K팝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이 연령대를 구성하던 인구는 90년대 초반과 중반에 70만∼75만명씩 태어났다. 앞으로 3년 후면 한 해에 40만명대로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가 K팝 공급자이며 소비자 연령대가 될 것인데, K팝은 필연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옥석이 가려져 기획사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도전하는 사람의 수다. 도전하는 사람의 수가 60만명 이상에서 40만명으로 줄어들게 되면 당연히 가리기 위한 옥석의 규모가 지금의 3분의 2로 줄어든다. 재능을 가진 인구의 절대적인 수가 축소되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초저출산 세대는 이전 연령대에 비해 혼자 태어난 사람의 비율이 매우 크다. 자녀가 둘 이상이면 한 자녀가 아이돌이 된다고 해도 다른 자녀가 있기 때문에 용인해 줄 수가 있다. 하지만 자녀가 하나밖에 없을 때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K팝 스타가 되는 길을 가라고 할 부모는 많지 않다.

결국 공급 측면에서 3∼5년 뒤부터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인구의 크기가 축소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해외로부터 아이돌이 될 수 있는 ‘인구’를 수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현재도 해외에서 들어온 아이돌이 적지 않다. 그런데 현재의 해외 아이돌은 해외시장 개척에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지 절대적인 공급 축소의 결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외시장 개척과 관계없이 아이돌을 뽑을 수 있는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 해외로부터 재능 있는 10대 말 20대 초반의 인구를 ‘수입’하고자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이돌 그룹의 절반 이상이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수입’된 아이들로 채워지게 될 가능성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면 우리가 K팝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기도 머쓱하다.

수요의 측면은 또 어떠한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연령대는 10대부터 30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40대 ‘아재’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K팝 시장에서 음원 혹은 아이템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20대 초반이다. 이들의 크기가 5년 뒤부터 지금의 3분의 2로 주는 것은 K팝 시장의 필연적인 축소를 의미한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K팝을 실제로 듣고 구매해 줄 수 있는 인구집단의 연령을 확대하거나 해외시장을 지금보다 더욱 크게 개척하는 일인데, 쉽지 않음은 불 보듯 환하다.

사람의 수가 국력이 되는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익숙했던 것이 갑자기 변하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산업으로서의 K팝이 딱 여기에 속한다. 곧 K팝의 시대가 V팝의 시대로 바뀔 것이라는 베트남 인구국 국장의 농담이 그저 농담만이 아닐 것 같아 씁쓸하다.

조영태(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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