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후보 단일화 기사의 사진
후보 단일화는 한때 야권에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여겨졌다. 1997년 ‘DJP 단일화’로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게 결정적이다. 평생 집권을 하지 못할 것 같았던 김대중 후보는 보수의 원조 격인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5년 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정확히 말하면 노 후보는 여당 후보였다)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투표 전날 정 후보에 의해 단일화가 깨졌지만 지지층이 결집하고 부동층에서 동정 여론이 일면서 선거에서 이겼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야권은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에서 각종 단일화를 모색하거나 진행해 왔다. 지난 대선의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대표적이다. 비록 대선에서 패했지만 진보 진영 내에서 후보 단일화는 보수 진영에 맞설 강력한 무기로 재차 인식됐다.

그런데 보수 대통령이 파면돼 치러지는 5·9 대선에서 상황이 달라졌다. 독주 체제를 굳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맞설 후보 단일화 논의가 시작됐는데 추진 주체가 보수다. 바른정당이 24일 심야 마라톤 의총을 열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과 원샷 후보 단일화를 추진키로 했고 한국당에서는 보수 후보들을 하나로 묶는 단일화를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후보 단일화는 외국에선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제 다자 구도로 열린 프랑스 대선도 단일화 없이 1, 2위 후보가 다음달 초 결선투표를 갖는다. 우리 정치에서 단일화가 많은 이유를 한국인 특유의 정서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다수 국민이 역전, 한방 등 약자의 막판 뒤집기에 환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도 감동과 명분을 갖춰야 효과가 있다. 열세를 한 번에 바꿔보겠다는 계산에서만 추진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유권자 입장에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될 수 있다. 표를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이탈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민수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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