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유성열] 출산을 강요하지 마라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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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출산지도. 전국의 지역별 합계출산율, 출생아 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행정자치부에서 만들었던 지도다. 특히 지역별 가임기 여성인구 수를 표시한 지도가 여성뿐 아니라 남성까지 아연실색케 했다. ‘출산지도가 아니라 축산지도 같다’ ‘지도를 보고 번식을 하라는 의미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을 개·돼지 정도로 보는 탁상행정의 끔찍한 결과물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성들은 ‘정부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느낌’이라며 성토를 쏟아냈다. 저출산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출산지도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결국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폐쇄됐다. 행자부 차원에서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출산지도 홈페이지에는 사과문이 아닌 공지문이 떠 있다. ‘출산지도에 언급된 주요 용어나 주요 통계 내용은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제공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문구가 눈에 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했지만 국민이 느낀 불쾌한 감정에 대한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저출산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출생아는 역대 가장 적었고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7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출생아는 40만6300명으로 1970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적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7명을 기록했다. OECD에선 합계출산율 1.30명 미만을 초저출산 국가로 본다.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2006년부터 10년간 80조원의 세금을 썼다. 하지만 대책은 실패했고 수십조원의 예산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이 안 낳는 국민을 닦달하는 정책과 함께 매년 저출산 극복 예산을 큰 폭으로 증액하고 있다. 올해는 24조1000억원이 책정됐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은 21조4000억원이었고 실질적으로 아이를 많이 낳는 연령대인 20, 30대 인구는 1429만2568명이었다. 남녀 불문하고 이들에게 이 돈이 직접 지급된다고 가정하면 한 명당 150만원 정도를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1년간 150만원이 큰돈이겠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를 낳고 싶게 만들 만큼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강한 의문이 든다.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에는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린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대표적 분야가 교육이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지난해 기준 69.8%다. 최근 낮아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OECD 평균 수준인 40%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고교 졸업자 가운데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간다는 의미다.

대학만 나오면 인생이 탄탄대로를 걷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힘들게 공부해 대학에 들어가 막대한 등록금을 낸 뒤 졸업해도 취직이 되지 않는다. 지난 1분기 청년실업률은 10.8%로 수년째 두 자릿수다. 아르바이트·취업준비생 등 ‘숨은 실업자’를 포함한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올 1분기 23.6%까지 치솟았다.

취업문을 뚫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결혼을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 아이까지 낳으려면 방도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20, 30대는 가처분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2년 이상을 모아야 평균 매매가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 ‘칼퇴근’은 먼 나라 이야기여서 아이를 돌볼 여유가 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는 수시로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양육은커녕 스스로의 노후 대비조차 버겁다.

저출산 사태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지 않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또는 낳을 수 없는 사회, 그리고 그 같은 사회를 만든 역대 정부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의 출산 대책의 껍질을 핥는 땜질식 처방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인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비좁은 국토에 인구가 빽빽하게 모여 살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앞서 언급한 각종 폐단이 나타난다. 따라서 현재의 저출산 현상도 자연적인 인구 조절의 결과라고 본다. 인구가 줄면 보다 쾌적한 삶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고령자 부양 부담이 늘겠지만 그것도 한때다. 국민총생산(GDP)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어차피 온전히 개개인에게 그 과실이 돌아오지도 않는 것을. 물론 국민보다 국가 경제가 중요하고, 국민을 생산력의 근원 정도로 치부하는 일부 위정자와 공직자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다.

글=유성열 경제부 기자 nukuva@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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