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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검증 리포트] 대입 공약 상당수 ‘재탕’… 심각한 후유증 우려

⑤ 입시·교육격차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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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변화가 불가피하다. 문·이과 통합을 지향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맞물려 이미 적지 않은 변화가 예고돼 있었다.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은 오는 7월 발표 예정인데 출제 범위나 과목, 난이도 등에 따라 고교 교육과 대입 전반에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대통령 후보들도 대입 제도 전반을 뜯어고칠 태세다. 그러나 대입 공약 대다수가 마치 신선한 정책인 듯 발표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과거 시행했다 문제가 발견돼 폐지했던 ‘재탕’ 정책들이다. 후보 공통으로 부작용에 대한 깊은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고 일단 발표하고 보자는 식으로 공약을 내놓고 있어 심각한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새 수능 어찌될까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유승민 후보는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이다. 문 후보와 심 후보는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2021학년도 수능부터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공약을 내놨다. 안 후보와 유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가 자격고사화 방침을 밝혔다. 수능 점수가 당락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통과의례처럼 되는 것이다.

현재 대입은 학교생활기록부 위주인 수시 모집과 수능 위주인 정시 모집으로 나뉜다. 2019학년의 경우 정시 모집인원이 8만2992명(23.8%)인데 절대평가나 자격고사로 전환되면 정시 인원이 대폭 축소되거나 주요 대학에서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대입은 내신 성적을 보는 학생부 교과전형과 교과 성적과 비교과 활동 등을 종합 평가하는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수능이 영향력을 잃으면 주요 대학들은 수능 말고 다른 변별력 요소를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문 후보, 안 후보, 심 후보, 유 후보 모두 대학별 논술고사는 폐지할 생각이다. 기존 논술을 폐지하는 마당에 대학별 본고사 부활은 쉽지 않다. 또한 고교 내신 성적은 절대평가로 전환될 예정이다. 문 후보와 안 후보 등은 고교 학점제 구상까지 밝혔다. 고교 수준이 천차만별인 데다 내신 부풀리기 우려로 고교 내신이 주요 대학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주요 대학들이 선호해 온 학종이 현재보다 늘어날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홍준표 후보의 그림은 전혀 다르다. 점차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학종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현대판 음서제’라고 규정했다. 부모 혹은 교사로부터 관리받는 학생에게 유리하고, 방황하다 다시 공부하려는 학생이 만회할 길이 없다는 학종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태도다. 학종의 대안으로 수능 영향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공약을 내놨다. 정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수능을 연 2회로 늘려서 높은 점수를 갖고 대학에 가도록 한다는 공약을 내놨다. 수능 도입 초창기에 난이도 조절 실패로 접었던 방안이다. 하지만 단 한 차례 수능으로 대입 결과가 좌우되는 현재 방식이 학생에게 가혹하고 비교육적이란 문제 제기도 여전한 상태다.

변죽만 울린 대입 간소화

다섯 후보 모두 대입 간소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행 대입은 ‘4+2’ 체제로 불린다. 수시가 4종으로 학생부 교과, 학종, 논술, 실기 등이다. 정시는 2종인데 수능, 실기를 말한다. 문 후보와 심 후보는 학생부 교과, 학종, 수능으로 단순화할 생각이다. 유 후보는 학생부, 면접, 수능을 제시했고, 안 후보는 논술 폐지를 내걸었다. 홍 후보도 구체적이진 않지만 대입 간소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대입이 복잡한 이유는 전형 유형이 많아서가 아니다. 후보들이 없애겠다고 약속한 논술과 실기 전형은 많은 수가 아니다. 2019학년도에 수시 논술 위주 전형에서 선발되는 인원은 3.8%, 실기는 5.6%에 불과하다. 정시 실기는 2.8%다. 대입이 복잡해진 이유 중 하나는 학종의 전형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비교과 점수, 수능 반영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학생부 교과, 학종, 수능으로 단순화한다는 공약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와 닿지 않는 이유다. 대학마다 학과마다 점수 산정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지원하려는 대학에 대한 정보와 맞춤형 지원 전략은 대입에서 필수 요소가 된다. 학생과 학부모는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게 된다. 1회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을 훌쩍 넘는 고액 컨설팅이 성행하는 토대가 된다.

입시 공약이 면밀한 검토 뒤 발표됐다는 인상을 주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입시 정책의 폐해는 심각했다. 수능의 영향력을 자격고사 수준으로 줄여보고, 수준별 수능을 도입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혼란만 야기했다. 예컨대 노무현정부가 추진한 수능 등급제는 혼란만 야기하고 1년 만에 폐기됐고, 이명박정부의 수준별 수능도 마찬가지였다. 설익은 실험의 피해자는 늘 학생이었다.

문 후보는 ‘수시 단계적 축소’ 공약으로 현재 대입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일자 “수시 축소가 정시 확대는 아니다”는 모호한 태도로 돌아섰다. 안 후보는 불과 13개월 만에 수시와 학종에 대한 공약이 뒤집혔다. 지난해 3월 발행된 국민의당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약집에는 사교육과 공교육 파행의 원흉으로 수시와 학종을 지목하고 “수시와 학종 대폭 제한”을 내걸었다. 이번 대선 공약에선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입학사정관, 면접으로 선발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홍 후보는 공약집에는 대입 관련한 내용이 없고 토론회 등에서 산발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글=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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