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우리는 예수를 어디서 찾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24장 1∼5절

[오늘의 설교] 우리는 예수를 어디서 찾고 있습니까 기사의 사진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면서 기대를 품습니다. 새로운 곳을 가거나 해보지 않은 일을 하게 될 경우 기대는 더욱 커집니다. 어디 새로운 것뿐이겠습니까.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하더라도 기대하는 바는 있게 마련입니다. 사고 없이 안전하며 평안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삶은 기대의 연속입니다.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삶을 한 걸음 더 성숙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정말 선하고 좋은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확인해보시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절망하고 낙심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여인들은 주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여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서 갔습니까. 향료를 준비했습니다. “이레의 첫 날 이른 새벽에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눅 24:1·새번역)

왜 향료를 준비했을까요.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름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주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러니 여인들이 당초 기대했던 것은 예수께서 무덤에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들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시신으로 안전하게 안치되어 있기를 기대하며 무덤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여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의 시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데….”(눅 24:3∼4·새번역) 내 뜻대로, 자신의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는 실망하고 힘겨워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주님이 무덤에 계시는 것이 여인들에게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무덤에 계시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까.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 중에는 참된 것이 아닌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때때로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님 시신이 없어 당혹스러워 하는 여인들에게 주님의 천사는 말합니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눅 24:5·새번역)

이 질문은 우리를 향한 뼈 있는 질문입니다.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죽음과 같은 무덤 속에서 찾고 있습니까. 화석과 박제로 가득한 박물관 안에서 찾고 있습니까.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죽음의 처소, 절망의 처소에 계시지 않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 자리를 소망의 자리로 바꿔주십니다. 천사들의 말,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 계시지 않다’는 말은 주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생명의 자리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절망과 눈물의 자리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소망과 감사가 됩니다. 여인들은 무덤에 갔으나 그 무덤엔 예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여인들과 우리 모두에게 소망인 것처럼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소망과 기쁨, 감사가 되는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정요섭 서울 꿈이있는미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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