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규의 문화공방] <103> 무의식적 표절 기사의 사진
가수 전인권
그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대중은 의아하다. 원작과 비교를 하다보면 그 유사성에 놀랍다. 창작자의 억울함을 이해하기 힘들다. 유사성 자체로 독자와 청자조차 부끄러움을 느낀다. 창작자의 대변이 무색하다. 들어본 적 없고 읽어본 적 없다고 해도 책임은 창작자의 몫이다. 최근 전인권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가 표절 시비를 불렀다. 두 해 전에는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문단을 발칵 뒤집었다. 음악을 듣는 비전문가들의 귀에서 표절 의혹 곡이 원곡과 유사하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은 창작자의 치욕이다. 물론 한정된 음계로 음악을 창작하다 보면 비슷한 선율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의식 속에서 나온 멜로디였다 해도 결과적으로 표절이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 표절 판결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지 해리슨이 1970년에 발표한 ‘My sweet lord’는 당시 빅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룹 ‘더 시폰스’의 ‘He’s So Fine’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76년 법원에서 표절 판결을 받았다. 조지 해리슨 역시 표절 대상 곡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잠재의식적 표절’로 판결했다. 의도의 유무와 상관없이 무의식중에 작업한 곡이라도 원곡과 같다면 표절이라고 못 박았다. 천문학적인 배상이 내려졌다. 표절이 친고죄로 바뀌면서 표절은 대범해졌다. 원작자가 고소를 해도 법원 판결은 언제 내려질지 오리무중이다. 그 사이 논란은 증발되고 유야무야 묻힌다. 90년대 우리 대중음악계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았다. 표절 시비에 연루되는 사실이 두려워 외국 음반사들에 저작권리를 모두 뺏긴 히트곡이 허다했다.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는 내용을 계약서에 첨부하기도 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가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다. 창작의 책임은 무한하고 창작자의 자기 검열은 생명이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강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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