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내일을열며

[내일을 열며-손영옥] ‘광화문 대통령’에 바란다

[내일을 열며-손영옥] ‘광화문 대통령’에 바란다 기사의 사진
‘촛불 대통령’ ‘광화문 대통령’의 탄생이다. 마지막 대선 유세를 광화문에서 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이 내려다보이는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했다. 당선이 확실시됐을 때는 광화문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당선 수락연설을 했다. 자신이 거둔 승리를 ‘간절함의 승리’라고 했다.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 염원이 자신에게 투사됐다는 것이다.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그렇게 광화문 퍼포먼스를 통해 그 광장을 뜨겁게 메웠던 촛불 민심의 적자(嫡子)가 됐다.

새 대통령을 맞은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차분하다. 예상대로여서일 것이다. 역전극은 없었다. 선거 초반부터 돌았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의 가시화다.

그런데 표심이 민심의 정확한 반영은 아니다. 사전 투표 열기가 뜨거웠던 것에 비해 기대보다 낮은 투표율은 마지막까지 갈팡질팡한 유권자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최선은 없고 차선만 있을 때 주저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자구도였던 이번 선거는 특히 그랬다. 정두언 전 의원이 “선택할 후보가 없어 기권했다”고 솔직하게 밝혀 뭇매를 맞았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기표소를 목전에 두고도 이 후보와 저 후보 사이를 오락가락했던 이는 ‘샤이 보수’만이 아니었다. 무수한 ‘샤이 진보’도 있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유권자들은 확실히 과거보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문제는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하에서 여전히 소신 투표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표 방지 심리 탓에 결국 될 사람에게 몰아서 찍어주게 된다. ‘어대문’은 ‘어차피 대세 대통령’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제도상의 한계가 있기에 ‘1강 2중 2약’ 구도의 이번 대선에서 2약 후보가 거둔 선전은 값지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각각 6.8%, 6.2%의 득표율을 거뒀다. 특히 유 후보는 ‘배신의 정치인’이라는 낙인, 소속 의원 막판 집단탈당의 악재를 딛고 창당 100일 남짓 만에 이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 그가 꺼냈던 ‘따뜻한 보수’ ‘개혁 보수’는 이른바 ‘태극기 세력’으로 통하는 꼴보수뿐인 한국 사회에 새로운 보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심 후보는 진보정당의 차가운 이미지를 벗어내고 맵고도 후덕한 언니 이미지로 심블리 애칭까지 얻었다. 그의 득표율은 진보정당 역대 최고치인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3.9%를 크게 상회한다. 그만큼 보수와 진보의 색깔이 다채로워졌다. 나는 이들 소수파의 약진이 광화문 촛불 민심이 잉태한 또 다른 자식들이라고 생각한다. 촛불의 시대정신은 다양성의 존재, 소통의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촛불 민심을 새겨듣고 보수의 새로운 길을 생각하고, 날카로운 금속성 이미지를 거세하고 소통하는 진보정당으로 거듭난 것이다. 패배했지만 승리한 것이다.

새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을 자처한다. 광화문 촛불 정신을 새기겠다고 한다. 그는 “저를 찍지 않은 국민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나아가 대세인 그를 따르기 위해 소신을 꺾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도 수용해야 한다. 이는 탕평 정책이 보다 광범위해야 함을 의미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목소리, 소수의 목소리도 제도권 내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시스템 개혁에 적극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대선에서의 결선 투표, 총선에서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적극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투표와 집회만 아는 우리에게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같은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새 대통령의 몫이다. 광장 정치와 제도권 정치를 소통시키는 데 진정한 ‘광장 대통령’의 길이 있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