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박재찬] 5월의 성찰 기사의 사진
새 대통령을 뽑고 나니 5월의 반이 지났다. ‘가정의 달’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볼 틈도 없는 와중에 알고 지내는 한 목사님의 페이스북 글이 눈길을 붙잡았다.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안양의 메트로 병원 호스피스 병동. 안양호스피스선교회 자원봉사자로 꾸려진 ‘포에버 합창단’이 말기암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작은 공연을 선보였다. 10명 남짓한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해 병실마다 설치된 모니터와 스피커로 감상한 모양이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어머니의 마음’ 첫 소절이 흐르자 환자들과 곁에 있던 자녀들의 눈엔 금세 눈물이 고였다. 더러는 훌쩍였다. “아마도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갚을 길이 없기도 하거니와 내년 어버이날을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선교회를 20년 넘게 이끌고 있는 김승주 목사의 설명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에만 2명의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그는 전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생을 유지하는 기간은 평균 20일 안팎. 이들 곁을 지키는 원목이나 자원봉사자들은 그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붙잡아주며 동행하는 반려자들이다.

타인의 임종을 자주 접하는 원목들은 일반인이나 다른 종류의 사역을 펼치는 목회자들보다 죽음에 대해 초연한 편이다. 최근 김성은(총신대 목회상담학) 박사는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원목을 포함해 목회자 400여명의 설문을 통해 죽음에 대한 불안도를 조사해 봤더니 원목의 불안감이 선교사나 일반 목회자들에 비해 훨씬 덜했다.

5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 리커트 척도 응답 방식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도가 원목은 2.4였고, 선교사와 일반 목회자는 각각 3.1, 3.3이었다. 수치가 높을수록 죽음에 대해 더 많이 불안해한다는 뜻이다. “원목들이 아픈 사람이나 임종을 접하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기회가 더 많고 더 익숙하기 때문 아닐까요.” 김 박사의 해석이다.

1년 전쯤부터 회사 사무실에 샘물호스피스선교회의 소식지가 매달 배달된다. 환자 투병기와 간병기, 호스피스 관련 의학 논문, 자원봉사 소감문 등이 빼곡한 30여쪽짜리 잡지다.

“하루 매상이 3000만원에 마진이 30%, 한 달 순익이 2억5000만원이나 됐어요. 그걸 무서워해야 했는데.… 그땐 내 주위에 그저 아부하려는 사람들뿐이지 권고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당좌수표 부도로 40일간 감방에 있다 나오니 (주위 사람들이) 썰물처럼 떠나가더라고….”

지난 1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원봉사자와 나눴던 50대 남성 환자의 고백이다. 의류 사업으로 맛본 인생의 성공과 쾌락, 이어진 배신과 실패, 후회,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 선 자신의 처지를 투박하지만 솔직한 어조로 담아냈다.

‘어젯밤 생명을 거두어가셨을 수도 있지만 오늘을 허락해주신….’ 한 20대 대학생 자원봉사자는 호스피스 병동 식당 벽에 걸린 기도문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고 한다. 소식지에 등장하는 고백들이 베스트셀러 소설 못지않게 가슴에 와 닿는 경험을 매월 누리곤 한다.

이번 달 받아본 잡지의 발간 호수는 245호. 호스피스 병동을 거쳐 간 수많은 환자와 가족, 또는 원목과 자원봉사자들이 소식지를 통해 20년 넘게 호소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끝이 있는 인생임을 깨닫는 순간, 겸손과 섬김의 정신이 깃든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할 대목이다.

새 정부가 막 출범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끝난 직전 정부를 의식한 듯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섬기는 대통령’ ‘겸손한 권력’이었다. 임기 첫날부터 이어지는 탈권위 행보와 파격 인사도 눈길을 끈다. 기대가 되는 한편으로 초심을 얼마나 잘 유지할지 의구심도 생긴다. 유한한 권력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박재찬 종교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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