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류광열 <1> 선진 농업에 일찍 눈 떠… 28세에 고향서 큰 농장

1960년대 말 일본 농촌 견학하고 자극, 농장 성공적 운영… 외국서 연수 오기도

[역경의 열매] 류광열 <1> 선진 농업에 일찍 눈 떠… 28세에 고향서 큰 농장 기사의 사진
갈릴리농원 대표 류광열 장로가 경기도 파주시의 농원 뒤편에 있는 ‘카페 소솜’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일생의 꿈과 희망이 깃들어 있는 갈릴리농원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지난 세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지나면 모든 것이 추억이라고 했던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마저도 지금 생각하면 모두 주님이 예비하신 순간들이었다.

주님의 축복 속에 나와 우리 가정의 지경은 크게 넓어졌다. 상상하기 힘든 복을 받았다. 모든 게 주님이 주신 은혜의 산물들이다. 받은 복을 세어보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청년의 때,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던 건 농업이었다. 생명산업의 정수인 농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생명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

갈릴리농원과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비롯해 현재 건축 마무리 단계에 있는 교회까지 모두 경기 파주시 탄현면 방촌로에 위치해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공간은 모두 주님께 바쳤다. 이름도 ‘홀리랜드’다. 파주시 탄현면은 육신의 고향이자 영혼의 고향이다. 나는 1943년 2월 28일 탄현면 문지리에서 태어났다.

지금이야 큰 도로들이 개통되고 LG디스플레이 같은 대기업의 생산시설이 입주해 주민도 늘고 서울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졌지만 내가 펄펄 날아다니던 20대 때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9남매 중 막내였던 나는 형제들이 모두 세상을 일찍 떠나 어린 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다. 외로웠지만 꿈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를 그토록 흥분시켰던 농군의 삶을 살아가기로 서원하고 그 길에 들어섰다. 뜬금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자연과 벗하고 그 섭리를 깨달으면서 살도록 디자인하셨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빨리, 또 정확히 찾은 경우다. 1960년대 말 이미 농업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 20일 동안 선진 농업현장을 둘러보는 쉽지 않은 기회를 얻었다. 한국에선 여전히 소가 밭을 갈고 있는데 일본은 첨단 농기구가 논과 밭을 누비고 있었다. 심지어 냉동시설에 유통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었다.

일본 방문은 농업인으로서의 사명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일본에 가기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만 받은 상태였다면 일본의 첨단농업 현장을 견학한 후에는 한국의 후진농업의 수준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사명과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일본을 떠나 고향 문지리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농장을 시작했다. 매년 나락 500가마니 넘게 수확했고 젖소도 50마리를 키웠다. 농사 짓는 일꾼과 소를 돌보는 목부 여럿과 함께 일했다. 일본에서 보고 배운 것 중 한국 토양에 맞는 것들을 선별해 적용했고 성공을 거뒀다. 영농후계자들이 나의 농장에 와서 훈련을 받았고 대만에서도 우리 농장으로 연수를 왔다.

농장을 경영하며 농군으로서의 참 맛을 느끼던 그 때가 고작 28세였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약력=△1943년 경기도 파주 출생 △전국새농민회 11·12대 회장 역임 △새농민종합상, 국민포장, 은탑산업훈장, 대통령표창 수상 △제4회 장한한국인상 경영인부문 대상 △갈릴리농원 대표 △삼성교회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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