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서윤경] 김밥과 메밀국수 기사의 사진
“밥은 먹고 다니냐.”

형사 박두만은 살인사건의 강력한 용의자 박현규가 무혐의로 풀려나자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다. 이 말의 의미는 10년이 지난 2013년 박두만 아니 박두만 역을 맡았던 배우 송강호를 통해 제대로 전달됐다. 송강호는 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의 제안으로 직접 만든 대사였다며 “이런 짓 하고도 밥이 넘어가느냐”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맞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단순히 먹고사는 현실적 문제를 뜻하기도 하지만 먹는 사람의 심리를 투영하기도 한다.

배우 최민식이 2004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남긴 “네 마리 죽은 낙지에 명복을 빈다”는 말은 영화제 내내 화제가 됐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간 감금됐던 오대수(최민식)는 탈출하자마자 가장 먼저 산낙지를 먹으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최근엔 ‘먹는다’가 사회적 현상과도 결합했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먹는 방송(먹방)의 인기를 ‘5포 세대의 결핍을 채워주는 역할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다보니 ‘먹는 무엇’도 중요해졌다. 김밥은 지난해 ‘비선실세’를 수식하는 특별한 메뉴가 됐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청와대 요리사는 주문자인 최순실을 위해 식재료를 구비해 놓고 김밥을 만들었다.

지난 12일 이후 메밀국수는 ‘소통’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3000원짜리 식권을 내고 식판에 받은 메뉴가 메밀국수, 계란볶음밥이었다.

휴일인 14일 점심 정부세종청사 인근 편의점을 찾았다. 세종청사 주변 식당들 대부분이 일요일이면 문을 닫아서다. 점심 메뉴로 신중히 고른 건 하필 김밥 한 줄이었다. 기자실에서 홀로 김밥을 먹으며 지난해 말 이후 오해를 받고 있었던 김밥의 의미를 다시 곱씹었다.

먹기 편하고 저렴한 데다 배까지 불리는 김밥 한 줄의 넉넉함 말이다.

글=서윤경 차장,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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