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인의를 찾아서-(112) 세브란스병원 자가면역 혈관염 클리닉] 희귀 혈관염 환자들의 희망 기사의 사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자가면역 혈관염 클리닉 의료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은성 안성수 전임의, 김호재 전공의, 김영현 간호사, 유주영 전공의, 박형아 간호사, 이상원 박용범 교수, 윤잔디 김솔아 간호사. 연세의료원 제공
타카야수동맥염은 대동맥과 그 분지동맥 주위 조직에 염증을 일으켜 협착증 및 동맥류를 일으키는 병이다. 일본인 안과의사 타카야수(高安)가 학계에 처음 보고했다. 발병 원인은 아직 확실치 않고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20∼49세 젊은 아시아 여성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또 항호중구세포질항체(ANCA)연관 혈관염은 우리 몸에서 굵은 혈관의 안쪽에 염증을 일으키는 타카야수동맥염과 달리 주로 모세혈관과 같은 작은 혈관 바깥쪽 조직에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두 질환 모두 혈관에 원인 모를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류마티스내과에서 다룬다. 갑작스러운 면역체계 이상으로 자기 조직을 ‘적군’으로 간주, 손상시키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봐서다.

하지만 현실은 증상 자체가 혈관의 이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모른 채 특정 장기의 문제로 알고,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의사나 환자 모두 이 병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치명적인 합병증이 와 숨질 때까지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지내기 쉽다는 점도 결림돌이다.

희귀난치성 혈관염 극복 컨트롤 타워 자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이렇듯 올바른 치료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헤매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국내 자가면역 혈관염 환자들을 입체적으로 돌봐주는 몇 안 되는 의료기관 중 한 곳이다.

지난 2000년 이후 최근 17년간 원인불명의 통증과 객혈 만성피로 고열 혈뇨 단백뇨 등으로 고생하다가 이 병원에서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된 ANCA연관 혈관염 환자들만도 어림잡아 170여명에 이른다.

이 병원 류마티스내과 이상원 교수는 15일 “전문(특수)클리닉을 개설하고 ANCA항체 검사를 우리 병원 진단검사항목에 올린 후 최근 6개월간 새로 발견된 혈관염 환자도 20여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해 11월부터 주1회, 매주 수요일 류마티스내과에 ‘자가면역 혈관염 클리닉’을 개설,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헤매고 있는 국내 혈관염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돌봐주고 있다.

이 클리닉의 진료 영역은 대동맥을 해치는 타카야수동맥염은 물론 주로 가느다란 소(小)혈관을 침범하는 ANCA연관 혈관염에 이르기까지 각종 혈관염을 아우른다.

의료진은 박용범·이상원 교수팀을 비롯해 박은성·안성수 전임의팀, 김호재·유주영 전공의팀 등 총 6명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류마티스내과 전문의(전공의)들이다.

박용범 교수는 타카야수동맥염과 거대세포동맥염 등 우리 몸속 대(大)혈관에 생기는 염증을 주로 다룬다. 이상원 교수는 결절다발동맥염, ANCA연관 혈관염 등 소혈관에 생기는 염증질환을 책임진다.

박 교수는 미국 UC샌디에고 의대와 하버드의대 부속 병원(MGH)을 2006년과 2016년 각각 방문, 류마티스내과에서 최신 진단 및 치료법을 연구하고 돌아와 임상진료에 응용하고 있다.

이상원 교수는 2016년 영국 임페리얼런던 의대 부속 함머스미스(Hammersmith)병원 신장내과 찰스 퓨제이 교수팀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ANCA연관 혈관염 동물모델 개발에 참여하고 ANCA연관 혈관염 환자 진료와 코호트 운영 체계에 대해 공부하고 왔다.

이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ANCA연관 혈관염 환자 코호트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중이다. 또 ANCA연관 혈관염 동물모델을 이용한 발병기전 연구와 함께 새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자가면역 혈관염 클리닉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여기저기 분산돼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국내 희귀난치성 혈관염 환자들을 입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스테로이드·항암제 적절히 처방하면 호전

우리 몸에 생기는 혈관염은 대체로 혈관의 크기와 유형에 따라 나뉜다. 먼저 대동맥과 그 분지동맥 등 대혈관에 발생하는 혈관염으로는 타카야수동맥염과 거대세포동맥염이 대표적이다. 중(中)혈관, 즉 중간 굵기 혈관에 생기는 결절다발동맥염 원발중추신경계혈관염, 어린이에 흔한 가와사키병 등도 있다.

마지막으로 소혈관에 생기는 혈관염으로는 ANCA연관 혈관염 외에 헤노흐-쉔라인자반증, 한냉글로불린혈증혈관염, 과민성혈관염 등이 비교적 흔하다.

타카야수동맥염에 걸리면 신체검사에서 양 팔의 혈압이 서로 다르게 나오거나, 팔의 맥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전체 환자의 3분의1 이상에서 고혈압이 나타나는 것 역시 특징적이다.

하지만 전신 혈관을 침범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피로감 어지럼증 열감 관절통 식욕부진 체중감소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환자에 따라선 국소적으로 혈관 부위 압통이나 목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타카야수동맥염 환자들이 심장내과를 찾을 때는 십중팔구 고혈압과 혈관협착에 의한 심부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타카야수동맥염은 대개 약물치료를 기반으로 혈관조영 및 혈관중재 시술로 치료한다. 약물요법으로는 스테로이드 제제와 면역억제제가 핵심 치료제로 쓰이고, 혈관중재 시술로는 좁아진 혈관을 넓혀주는 풍선확장술 스텐트 삽입술 등이 주로 활용된다.

ANCA연관 혈관염 역시 지각발견이 많아 치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워낙 희귀질환인데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도 않은 질환이기 때문이다. 발병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도 객혈 고열 단백뇨 발진 근육통 관절통 혈뇨 각막염 두통 등 우리가 평소 흔히 겪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 병을 의심하기가 쉽지 않다.

ANCA연관 혈관염인지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선 철저한 문진과 신체·혈액·소변·영상·조직검사 등을 두루 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개월마다 환자의 질병 상태와 혈관염 활성도와 혈관 손상 정도를 평가하고 기록해 객관적으로 질병 경과와 추이를 확인, 치료에 반영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근본 원인인 혈관염에 대해선 알지도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만 매달려 엉뚱한 치료를 받다가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단 한 병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자가면역 혈관염클리닉 의료진의 다짐이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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