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월드] ‘스트롱맨 오면초가’… 돌파의 ‘문’을 찾아라 기사의 사진
문재인정부 출범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극단으로 치닫던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존재감이 없던’ 한국은 문 대통령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위상 정립에 시동을 걸었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한국 무시)을 넘어 ‘코리아 낫싱’(Korea Nothing·한국 배제)이 될 뻔했던 외교적 위기가 원래 궤도로 되돌아갈지 주목된다.

북한 위협을 비롯해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변수는 갈수록 늘어나면서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지난 14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극단으로 치닫던 한반도 위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줬다. 북한 문제가 ‘4월 위기설’을 벗어나 진정 국면에서 다시 긴장을 고조시키자 한반도 주변 4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도 저마다의 입장과 셈법이 복잡해졌다.

더욱이 북한 위협을 둘러싸고 서로의 국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 열강들은 언제든지 ‘코리아 배싱’(Korea Bashing·한국 때리기)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을 위시해 4강의 국가수반 모두 ‘스트롱맨’(Strongman·힘으로 지배하는 정치 지도자)이란 점도 우려를 증폭시킨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한반도 주변국 정상들을 풍자한 패러디가 SNS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패러디에는 북한과 동아시아 관련 4강 정상의 모습과 캐릭터 설명이 등장한다. 동아시아 핵전쟁을 상징하는 배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황제(Emperor)’로 등장하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초대 국가주석을 뜻하는 ‘마오(Mao)’란 명찰을 달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 무신정권 막부의 수장인 ‘쇼군(將軍)’으로 묘사됐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정 러시아 황제인 ‘차르(царь)’로 나온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겐 아예 ‘신(God)’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하나같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지도자들로 대화 상대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인물들이다. 이들과 첨예한 현안들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문 대통령으로선 어려운 숙제다. 이들에 기죽지 않고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선 4강별 ‘맞춤전략’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방위비 분담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의 현안을 논의해야 한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를 저돌적인 성격의 트럼프 대통령은 신중하고 원칙주의적 성향의 문 대통령과 한눈에 봐도 코드가 맞지 않는 상대다. 문 대통령 취임 전부터 사드와 FTA 문제로 압박수위를 높였던 행보로 볼 때 향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새 정부를 상대로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안보와 경제 카드를 번갈아 쓰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시킬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에겐 우리의 안보·경제 이익을 지켜내면서도 미국과 껄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실용주의적 성향을 활용해 첫 매듭인 북한 문제만 잘 풀어나간다면 생각보다 매끄럽게 동맹 간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 주석과는 북한 문제와 사드 보복 확대로 악화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좀처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과묵하고 신중한 스타일의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성향과도 아주 비슷해 양국 정상 간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두 정상이 양국 간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다는 입장을 가진 만큼 차분한 분위기 속에 차근차근 민감한 외교 현안을 풀어나갈 수도 있다. 공통분모로 묶인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사드 갈등을 동시에 해소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아베 총리와의 협상 테이블에선 얼굴을 붉힐 가능성이 높다. 전임 박근혜정부가 졸속으로 체결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한·일 관계 개선에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다. 고집 센 일본의 극우 총리는 정치·외교 부문에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성향을 보여 왔다. 문 대통령 역시 과거사 문제에 있어선 ‘실리적 타협’을 배제하고 ‘원칙’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두 정상 간에 절충의 여지가 크지 않은 만큼 향후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양국이 사사건건 부닥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다만 양국의 공통 관심사인 북한 핵 문제와 과거사 현안을 분리한 ‘투 트랙’ 전략을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는다면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대면도 중요하다. 북한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러 관계는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소홀히 다뤄진 측면이 있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확고한 통치기반을 구축해 온 제왕적 지도자 푸틴 대통령 역시 결코 수월한 대화 상대가 아니다. 더욱이 박근혜정부의 대북 독자제재 조치로 푸틴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되면서 한국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하지만 국제 정치·군사 문제에서만큼은 러시아가 여전히 주요 2개국(G2) 중 하나란 인식을 바탕으로 양국 정상이 균형 잡힌 대안을 공유한다면 러시아는 새로운 ‘우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반도 위기의 직접 당사자로서 남북관계의 개선은 4강을 향한 모든 전략적 접근에 우선하는 전제다. 남북관계 때문에 현재 한국이 외교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역설적으로 지난 9년간 파탄 났던 남북관계를 원상회복시킨다면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가장 강력한 카드가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평양에도 갈 수 있다”는 전향적 입장을 피력한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 나온 언급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그동안의 외교안보 위기들이 일시에 해소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선 당선 이전에 데뷔한 타임지 표지의 설명처럼 문 대통령이 앞으로 ‘협상가(The Negotiator)’ 역할을 얼마나 잘 해낼지가 관건이다. 탄핵당한 ‘스트롱맨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커다란 외교적 공백을 메우고 나아가 스트롱맨들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동북아 정치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는 한국이 연해지역 국가로서 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 같은 대륙세력 사이에 낀 가장 손해가 많은 국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위기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을 지정학적 ‘이점’으로 승화시켜 외교적 역량을 집중한다면, 한국의 새로운 리더십은 협상가를 넘어 ‘조정자(Equalizer)’가 될 수도 있다. 그가 보여줄 외교적 리더십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 ichthus@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