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소통 기사의 사진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국민들의 바람이 있다면 아마도 소통일 것입니다. 소통은 정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 직장이 소통되지 않고 불통된다면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소통은 한자 그대로 ‘트여서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뜻이 서로 잘 통해서 오해가 없는 것입니다. 오해가 없고 마음이 잘 통하는 겁니다.

우리가 전화통화를 할 때 상대방의 목소리를 잘 듣고 내 말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됐을 때 통화가 잘 됐다고 말합니다. 소통이 바로 이런 겁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내 말만 전하면 대화가 아니라 불통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24시간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걸 얻고자 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불통의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4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소통이 되지 않아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주님은 고난과 죽음에 대해 가볍게 말씀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하셨을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누가복음 22장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실망스럽게도 ‘정치적으로 누가 더 영향력을 가졌나’의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만 듣고 쟁취하려 했기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부부가 불통이 되면 함께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지옥인 것처럼 말입니다.

소통은 일을 잘한다고, 일을 많이 한다고 잘 하는 건 아닙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일보다는 마리아처럼 소통을 원하셨습니다. 일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걸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과 상관없는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주님과의 소통이 우선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 자기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모두 내려놓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집중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집중했기 때문에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소통의 삶은 하나님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화가 이루어 질 때 소통이 잘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는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보다 꼭 들어야 할 말씀을 듣는 훈련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을 살게 되고 자연스럽게 어딜 가든지 형통의 삶을 살게 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주님과 긴밀히 소통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듣고 말해서 가족 이웃과 소통하는 달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박상규(무안 꿈이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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