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대통령도 저러는데 기사의 사진
새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앉았던 의자를 스스로 밀어 넣고, 식판을 스스로 들고, 저고리를 스스로 벗어 걸고, 비서진들과 원탁에서 겸상 식사를 하고….

그 누구는 연출조차 하지 못했던 장면을 날마다 접하면서 국민들은 희망을 품게 된다. 법도 바뀌지 않았고 사람만 바뀌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바뀌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바뀌어 나갈 것 같아서다.

자신의 권위를 남보다 스스로 높게 여기는 게 권위주의다. 그런다고 권위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춘다 해서 권위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격의 없는 모습에 고관대작이나 권력자, 부자, 선생들의 마음은 좀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도 저러는데…’라며 한마디씩 할까봐.

많은 교통사고가 급커브나 급경사 길에서 과속하다 발생하듯이 권력자의 비극은 권위주의와 불통, 과욕으로 일어난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런 위험 요소는 없는가. 목회자들부터 진정한 권위를 잘 세워줬으면 좋겠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삶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교황 같은 제사장’ ‘제왕적 당회장’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당회장’이라는 호칭부터 ‘담임목사’로 바꿨으면 한다. ‘권위주의냐, 아니냐’는 언제나 상대방이 평가한다.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면 그런 거다. 권위주의는 교만을 낳고 교만은 불통을 낳고 불통은 결국 패망을 낳는다.

대통령은 이번에 ‘홍보수석’ 명칭을 ‘국민소통수석’으로 바꿨고 ‘대통령궁’인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나오겠다고 했다. 이미 집무장소도 비서동으로 옮겼다. 왜 그랬을까. 소통을 위해서다. 우리 교회 당회장실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대통령은 투표가 끝나자마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고 경쟁했던 당내 후보들을 만났다.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경쟁 후보들을 전화로 위로했고 취임을 앞두고 야당 당사부터 찾았다. 총리 후보 등도 직접 소개했다. 대통령은 권위 대신 국민과의 소통을 택했다. 과연 목사와 장로들은 교인들,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60대 남성 장로들 일부가 교회의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3040’ 또는 ‘4050’ 세대들과 함께 주니어보드(젊은 당회)라도 운영해보면 어떨까. 제직회는 교회 소통의 광장이 되고 있는가. 소수의 참석자들이 모여 통과의례식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면 담임목사가 공동의회, 제직회, 당회의 의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대통령은 나이와 성별, 출신지역을 뛰어넘어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했다. 그 중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관리를 측근이 아닌 전문 공무원에게 맡긴 것에서 우리는, 우리가 낸 세금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쓰일 수 있겠구나 확신을 갖게 된다.

교회 재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시급한 과제다. 전문성 있는 제직에게 재정 관리를 맡기고 외부로부터 매년 회계감사를 받으면 좋겠다. 사회가 그토록 원하는 목회자 세금도 내고.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0%’도 선언했다. 부교역자나 직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그럼에도 자격조건은 까다롭기만 하다. 부교역자를 모집할 때 배우자 이력서를 요구하고 배우자 취업 금지를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래서는 교회가 사회에 할 말이 없다.

대통령이 당선되자 한 측근은 “여기까지가 내 역할”이라며 외유를 떠나버렸다. 대통령을 만든 공신들은 떠나줘야 한다. 짐이 아니라 힘이 돼야 진짜 공신이다. 어떻게 해서든 권력자에게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쓰는 권력지향형 성직자들도 본업에 충실했으면 한다.

‘이게 나라냐’는 한탄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이 2022년 이맘때 ‘이게 나라다’라며 박수를 받고 내려오기 바란다. 겸손과 소통, 섬김이 좋은 브레이크가 될 것이다. 교회는 맹목적 지지를 지양하고 비판적 지지로 정권이 바로 서 가도록 기도하자. 그렇게 하자면 우리도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이게 교회냐’라며 우리를 걱정하고 있다. 이제 ‘이게 교회다’라고 뭔가 보여줘야 할 때다. 우리도 국민들에게 희망이 돼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마 23:12, 새번역)

이의용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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