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기호] 심블리를 위하여 기사의 사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마음에 물드는 경우는 대체 어느 때 일어나는 것일까? 뜻밖의 행동을 목격하거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그런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 대상이 된 사람이 쓰는 언어, 어휘로 인해 풍덩, 다이빙하듯 빠져버리는 일이 잦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한 사람의 말 안에는 그 사람의 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여러 선인의 가르침에 빚진 바가 더 크다.

지난 대선 기간 자칭 타칭 ‘심블리’라 불렸던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내 마음을 무슨 오랫동안 물에 담가놓은 잇꽃처럼 만들어버린 시작도 바로 그가 쓴 한 단어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 사연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녀에 대한 때늦은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이 편지를 사적으로 읽든, 공적으로 읽든 그것은 그녀의 자유이다.

‘습속(習俗)’이라고 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습관이 된 풍속’이라고 짤막하게 나와 있지만 철학사전류를 살펴보면 이 단어가 ‘관습’이나 ‘풍습’ 등과 어떻게 비슷하고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심블리가 무슨 자리, 누구와의 대화 중에 저 단어를 썼는지,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단어는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다른 모든 맥락을 유추할 힘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습속’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그 단어는 ‘도덕’보다는 ‘윤리’에 방점이 찍혀 있을 때 나오는 어휘이자, ‘집단’보다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자 할 때 발화되는 단어이다. ‘습속’으로부터의 탈피나, 자유. 이런 어휘나 표현을 쓰는 정치인을 나는 그때까지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순간 나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지, 엿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듯, 지난 대선 기간 심블리가 방송토론에서 보여준 사고와 논리의 정확함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것은 단기간 학습으로 인해 얻어질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으며, 오랜 시간 많은 사람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육화된 태도였다. 자연스럽게 내 주위 많은 사람도 그녀의 지지자로 변했고, 은근슬쩍 2위나 3위, 혹은 10%를 웃도는 표를 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듯 결과는 5위, 6.2%의 지지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왜 ‘돼지 발정제’ 운운하는 후보보다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며 평생을 살아온 심블리가 더 적은 표를 받은 것일까? 기호1번 후보 지지자들이 막판에 퍼뜨린 불안 심리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실력 부족 탓일까?

지금부터가 심블리에 대한 나의 진정한 러브레터이다. 나는 그녀와 정의당이 앞으로 조금 더 오염되기를 바란다. 성안에서 신념을 지키고 구호를 외치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윤리적으론 올바르게 보일지 몰라도 현실 정치에선 언제나 패배의 운명을 받아들여만 하는, 흑마술의 피해자가 될 뿐이다.

이 문장의 방점은 ‘성안’에 찍혀 있다. 나는 이번 선거 기간 중에 정의당의 편에 선 사람들이 ‘신념홀릭’의 모습으로 확장보다는 배제의 뉘앙스를 풍긴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점검에서부터 심블리가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 기회가 된다면 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훼손이나 오염, 수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이것은 남모르게 조용히 그녀에게 한 표를 행사한 한 유권자의 진솔한 고백이자, 죄의식의 표현이다. 다시 그녀를 응원하겠다.

이기호(광주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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