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 찾는 시약 ‘루미놀’ 나홀로 개발한 검시조사관 기사의 사진
임승 검시조사관이 경남지방경찰청 실험실에서 스포이드를 들고 혈흔 감식용 시약 루미놀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경남지방경찰청 제공
국산 혈흔 감식용 시약 루미놀을 개발한 인물은 경남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변사체를 분석하는 임승(43) 검시조사관이다. 그가 만든 루미놀은 제조단가가 수입 제품의 10분의 1 수준이고, 혈흔에 닿았을 때 내는 푸른빛은 주변을 어둡게 하지 않아도 선명하다. 범죄 현장을 찾은 경찰은 눈에 안 보이는 혈흔을 찾을 때 이 루미놀을 뿌린다.

국산 루미놀 개발은 8년 동안 임 조사관이 매달려온 가욋일이었다. 외국에서 비싸게 루미놀을 사와야 하는 것이 늘 언짢았다고 한다. 국산 제품도 있었지만 빛이 약했다.

“우리는 왜 외국만큼 밝게 빛나는 루미놀을 못 만들지?”

답이 없으면 답을 만들기로 했다. 대학원에서까지 공부한 생물화학 전공만 잘 살리면 못 만들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임 조사관은 대학원에서 생물화학 논문 4편을 낼 만큼 전공엔 자신이 있었다.

처음엔 발광도만 높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입 루미놀보다 5배까지 밝도록 화학물질을 넣었다. 핏속 DNA가 모두 망가졌다. DNA가 흐트러졌다면 혈흔 감식용 시약으로 가치가 없다. 3년 동안 실패만 거듭했다. 더 이상 실험 도구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루미놀을 포기하고 다른 실험을 하며 2년을 보냈다.

미련이 남았다. 다른 분야 실험 논문을 읽다 “유레카”를 외쳤다. 화학물질을 잘 조합하면 DNA를 보존하며 밝기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은 힌트를 얻었다. 임 조사관은 다시 루미놀 실험을 시작했다. 샘플을 만들 때마다 국과수에 보내 DNA를 확인했다. 3년 동안 국과수에서 퇴짜맞은 샘플만 30개쯤 된다.

지난해 10월, 불 꺼진 실험실에 앉은 임 조사관은 피 묻은 페이퍼디스크 위로 루미놀 시약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스포이드에서 떨어진 시약이 피에 닿자 또렷한 푸른빛을 냈다. 임 조사관의 눈도 빛났다.

한 달 후 국과수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보내주신 샘플 2개 모두 DNA에 이상이 없다.” 그제야 초조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달 전 떨어트린 시약 한 방울이 8년 동안 흘린 땀방울이 모인 결정체가 된 셈이었다. 그는 “8년 동안 짊어진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가족과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피에 뿌리면 빛을 내는 약’을 만들었다고 아버지가 자랑하자 초등학생 아이들도 박수치며 웃었다.

개발에 들어간 돈은 고작 200만원이었다. 이미 실험실에 있는 수많은 시약을 이리저리 뒤섞어가며 시약을 만들었다. 돈보다 열정이 만든 시약이었다.

임 조사관은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체분비물 감식용 시약을 만드는 게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 혈액 외에 침이나 피부세포 등 눈에 안 보이는 인체분비물을 만나면 빛을 내는 시약이다. 8년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한 방울의 빛나는 시약’을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그는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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