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前 오늘 스러진 ‘女인권’… 아직도 여성은 무섭다 기사의 사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년, 페미니즘(여성학)과 여성인권에 관심이 높아졌다. 오랫동안 쉬쉬했던 문단 내 성폭력이 폭로됐고, 피해자와 연대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1년 전 오늘(17일) 서울지하철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목숨을 잃었다. 범인 김모(35)씨가 경찰조사에서 “평소 여성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진술하면서 여성혐오 논란이 불거졌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혐오 문화에 대한 증언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성혐오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관심은 페미니즘(여성학)으로 이어졌다. 16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7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3.7배 늘었다. 성·연령별 구매율은 20대 여성이 41.1%로 가장 높았다. 지난달 정치사회 분야 월간 베스트셀러 10위권 내 페미니즘 도서 4권이 오르기도 했다.

서울 대방역 앞의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산하 성평등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성평등 도서관은 강남역 10번 출구 앞 포스트잇 벽을 형상화한 ‘시민 기억 존(zone)’을 조성했다. 도서관 이용자는 약 30% 증가했다.

변화는 SNS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사건 이후 페미니즘을 표방한 SNS 계정들이 여성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지난해 7월 서울 인사동길에서 생리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캠페인이 열리는가 하면 3개월 뒤에는 보신각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문화예술계 성추문 폭로가 시작된 곳도 트위터와 같은 SNS였다. 주로 문하생이거나 제자였던 이들은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들이 당했던 성희롱과 성폭력 경험을 폭로했다.

인식 변화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드러났다. 지난달 15일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지칭하는 시민 수백명은 광화문광장에 모여 “페미니즘 정책을 내놓는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며 유권자 행동에 나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행정·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 노력도 이어졌다. 서초구는 8억2000여만원을 들여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 비상벨 348대와 CCTV 39대를 설치했다. 특히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화장실은 남녀 출입구를 완전히 분리했다. 올해도 여성안심예산을 31억여원 책정해 화장실, 골목길 등의 위험요소를 제거해 나가고 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 등은 지난해 7월 공용화장실을 개선하고 남녀 화장실 분리 기준을 엄격히 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화장실 분리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의견 등도 나오면서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성이 원하는 건 보호 대책이 아니다.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13일 열린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집담회’에서 “CCTV·비상벨 설치나 남녀화장실 분리 등 안전한 공간을 구성하는 정책은 모순적으로 ‘그 이외의 공간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강화한다”며 “여성을 잠재적 피해자로 보고 보호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사회를 개선하는 데 정책 방향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언 이가현 김남중 기자

e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