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하나님은 누구를 칭찬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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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큰 집의 많고 다양한 그릇들 가운데 하나님은 어떤 그릇을 택하여 쓰실까. 바울이 밝힌 정답은 깨끗한 그릇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딤후 2:21)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이어도 주께서 쓰시면 귀한 그릇이고 금그릇과 은그릇이어도 주께서 쓰실 수 없는 그릇은 천한 그릇이다. 금과 은과 나무와 흙은 서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재료들일 뿐이다.

인재를 평가하는 예수님의 방식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 긴 여행을 떠나는 주인과 그의 세 하인이 있다. 주인은 세 하인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그 동안 다섯 달란트를 맡은 사람은 열심히 장사해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맡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를 해 두 달란트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됐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네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됐다. 마침내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은 하인들을 각각 불렀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하인을 칭찬하며 두 달란트를 남긴 하인도 칭찬한다. 열 달란트와 네 달란트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 두 사람을 똑같이 칭찬하며 똑같이 인정한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23)

주인의 칭찬과 보상이 이처럼 일점일획의 차이 없이 똑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달란트의 수가 차별이나 차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다양한 달란트는 오히려 서로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재능과 사명을 나타낸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하인은 자신의 달란트를 땅속에 그대로 파묻어 버렸다. 그는 왜 자신의 달란트를 땅 속에 묻은 것일까. 타인과 비교하며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을까. 오늘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열등감 빈곤감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열등감 빈곤감 박탈감은 다만 ‘감’으로 존재할 뿐이다. 진실은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만일 그의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한껏 발휘했다면 주인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아마 그에게도 똑같은 칭찬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지금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린 그를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호통을 치고 있다. 주인의 호통은 그의 달란트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의 달란트가 발휘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받았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요 적게 받았다고 실패한 게 아니다. 자신의 달란트에 충실한 것이 성공이요 자신의 달란트에 게으른 것이 실패다.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평가를 준비하는 방법도 달라지는 법이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되고자 할 필요가 없다. 호박꽃은 호박꽃답게 피고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된다. 서로는 비교될 수 없고 대체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다른 누군가의 사명을 부러워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길로 달려가려 하지 않았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하나님은 ‘얼마나 내가 나처럼 사는가’에 관심 있으시다. 세상은 획일적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을 각각 평가하신다. 주님은 고유한 빛깔로 사람을 빚으시고 각 사람에게 고유한 달란트를 맡기셨다. 주께서 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우위를 비교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비교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오직 나 자신이다. 과거의 ‘나’와 연단의 시간을 지나온 현재의 ‘나’를 비교해야 한다. 평가는 그곳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확인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눈부신, 가슴 벅찬 성공이다.

박노훈 (신촌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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