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신창호] 교통신호등 과다 공화국 기사의 사진
그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입 모양을 보니 욕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차를 몰고 좌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반대편에서 직전하려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모양이다. 교차로의 신호등은 꺼친 채 노란불만 점멸하고 있었다. “내가 직진인데 왜 먼저 좌회전하는 거야, 이 ○○야.” 자동차 유리창을 열고 그렇게 외치는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2013년 알고 지내던 미국인 교수가 서울을 다녀간 적이 있다.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그는 과감하게도 승용차를 렌트해 서울을 다니겠다고 했다. 한국인들 운전습관이 공격적이라며 극구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한국여행 3일째 되는 날,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는 “당신 말 들을 걸 잘못했다”는 말을 꺼냈다. 왜냐고 물었더니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교통신호등이 너무 많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8년 전 미국 연수 시절이 떠올랐다. 플로리다주 탤러해시란 곳이었다. 인구 15만명. 전형적인 중간 규모의 미국 도시였다. 매일 플로리다주립대 연구실로 출근하다시피 했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도시 중심가를 통과해야 했다. 2㎞ 정도 도로에 수많은 교차로가 있었지만 신호등이 있는 곳은 두 군데뿐이었다. 러시아워라 차가 몰리는데도 서로 뒤엉켜 혼잡스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교차로에선 먼저 도착한 차가 ‘일단정지’한 뒤 빠져나가고 그 다음 순서의 차량이 하나씩 질서정연하게 지나갔다. 거기서 이 규칙조차 몰라 쩔쩔매던 운전자는 나밖에 없었다.

집에서 ‘용인∼서울고속도로’까지 1㎞ 도로에는 신호등이 5개 있다. 200m마다 한 번꼴이다. 왕복 2차로의 골목도로에도 신호등이 두 개나 있다. 조만간 이 길에 새로운 교차로가 생긴다니 아마 신호등 하나가 더 달릴 것이다. 우리 동네만이 아니다. 서울, 아니 전국의 도로가 다 이렇다. 어딜 가도 신호등투성이다. 큰 길, 작은 길 가릴 게 없다. 운전을 하면서, 혹은 건널목을 건너면서 우리가 지키는 건 교통신호등밖에 없다. 이게 없으면 나머지 교통법규는 죄다 무시된다.

사람이 길을 건너다니는 건널목 앞에선 무조건 ‘일단정지’, 가로로 쳐진 흰색 차선에서도 무조건 ‘일단정지’, 교차로에선 먼저 도착한 차가 우선순위…. 현대사회에서 교통법규는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최소한의 규범이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규칙을 잘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시민들에게 규칙은 가르치지 않고, 신호등만 세운다. 신호등을 달면 그건 지킬 테니 나머지는 신경 쓰지 않는 셈이다. 초록불이 켜지면 가고, 빨간불이 켜지면 서는 것! 이걸 제외하면 우리가 알고 지키는 교통법규는 거의 없다. 초록불이 켜져 있으면 교차로에서 ‘꼬리 물기’를 해도 그만이고, 다른 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방해를 해도 그만이다. 초록불이 켜져 있으면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도 ‘일단정지’하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도 그만이다.

4년 전 미국인 교수는 내게 “한국은 교통신호등 과다 공화국”이라고 했다. “캐나다에 가면 200m마다 아이스하키 링크가 있고, 미국에 가면 200m마다 ‘일단정지’ 표시가 있는데 한국은 200m마다 교통신호등이 있다”고 웃었다.

교차로에서 교통신호등을 보면 ‘우상(偶像)’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모든 운전자와 보행자가 쳐다보고 있는데 각자는 다 ‘저건 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여긴다. 빨간불에서 노란불을 거쳐서 초록불이 되는 몇 초의 시간 동안, 우리는 카레이서처럼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올리고 황급히 출발할 수 있기만 기다린다. 교통신호등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우리가 함께 사수해야 할 규범의 대변자’일 뿐이란 생각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신창호 종교기획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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