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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후 6개월… 방치된 연세대 ‘언더우드 기념관’

작년 11월 보일러실 과열로 화재… 진화 직후 상태대로 현재까지 폐쇄 중

화재 후 6개월… 방치된 연세대 ‘언더우드 기념관’ 기사의 사진
연세대 언더우드家 기념관에 재현돼 있던 응접실. 오른쪽은 화재 후 모습으로 전시돼 있던 의자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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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캠퍼스 내에 있는 ‘언더우드가(家) 기념관’이 화재로 훼손된 뒤 6개월 넘도록 방치돼 있다. 이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한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 선교사 가문의 헌신을 생각할 때 부끄러운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지난해 11월 24일 지하 보일러실에서 과열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 뒤 현재까지 폐쇄된 상태다. 그러나 관리 책임이 있는 연세대가 화재발생 후 반년이 지나도록 보수공사를 하지 않고 있어 캠퍼스의 흉물로 전락했다. 연세대 설립자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시설이 방치돼 있는 이유에 대한 학교의 설명도 명쾌하지 않다.

23일 찾은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대대적 개보수가 시급해 보였다.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진화 직후의 상황 그대로였다. 불길이 치솟았던 2층은 특히 훼손이 심했다. 창문은 모두 깨져있고 지붕 일부도 부서져 반년 동안 눈과 비바람에 노출돼 있었다. 파손된 창문과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1층 창문으로는 길고양이들이 드나들었다. 폐쇄된 기념관 곳곳에서 아직 이전하지 않은 전시물이 목격됐다. 야외 테라스에는 언더우드가의 가계도와 미국북장로교의 선교선언 등을 담은 패널이 쌓여 있었고, 기념관 안에는 언더우드가가 사용하던 의자가 넘어진 채 뒹굴고 있었다. 진화 직후 “1층 전시실에 있던 유물을 모두 꺼냈다”는 학교의 발표를 무색케 했다.

국민일보가 이달 초 취재를 시작하자 대학 건축팀 관계자는 “보험금 정산도 완료됐고 공사 입찰도 끝냈다”고 답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대학은 당시까지 개보수를 위한 공사입찰을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취재에 들어가자 대학 기획팀은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김창석 기획팀장은 지난 16일 “3개월 안에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물론이고 주변 조경과 과거 언더우드가가 주차장으로 사용했던 곳까지 종합적으로 개보수하는 계획을 세운 뒤 시공사를 선정해 올해 안으로 복구를 완료하겠다. 연세대의 공식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보수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4대손인 원한석 연세대 재단이사는 “대학에 이 집을 기증했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화재 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며 학교의 미온적 태도에 아쉬움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언더우드가 기념관 복원과 운영위원회 조직을 동시에 진행하고 문화재 등록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역사신학자는 “언더우드가 기념관이 관리 주체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복구돼 봐야 또 다시 허점을 보일 수 있다”면서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문화재 등록도 진행해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연세대에 달렸다”고 말했다.

교계에서도 빠른 복구를 촉구하고 있다. 연세대 출신의 한 목회자는 “학교가 과연 언더우드가 기념관을 복구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언더우드 가문과 연세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설립자를 기념하는 기념관을 어떻게 저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 설립자인 원두우 선교사의 아들 원한경 박사(연희전문학교 3대 교장)가 학교 인근 언덕에 1927년 지은 사택으로 언더우드 가문이 50년 가까이 살던 집이다. 1949년 3월 17일 원한경 박사의 부인 에델 와그너 여사가 권총으로 무장한 남로당원들에게 마당에서 살해된 아픔도 깃들어 있다.

집의 소유권이 연세대로 이전된 건 1974년. 당시 언더우드 가문이 제시한 유일한 조건은 설립자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이 집은 유학생 기숙사와 교수 연구실 등으로 활용되다 2003년에야 언더우드가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화재 전 기념관은 원두우 원한경 원일한 3대 선교사의 유물을 담은 세 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었다.

내부에는 원두우 선교사의 형인 존 토마스 언더우드가 동생에게 보냈던 ‘언더우드 타자기’를 비롯해 원한경 박사의 책상과 책장, 전화기, 1931년 가족이 백두산을 등반하면서 촬영한 영상자료 등이 소장돼 있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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