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규직 꿈꾸며 헌신한 4년… 돌아온 건 해고 문자 한통 기사의 사진
“한 교수 아래, 한 장소에서 소속만 바꾼 채 4년을 일했는데 그냥 나가라네요.”

국책 연구기관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30대 절반을 보내고 실직당한 김모(35·여)씨는 23일 기자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성실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보낸 시간이 물거품이 됐다. 기간제법에는 ‘2년을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정해놓았지만, 고용주는 그의 소속을 바꾸는 편법으로 4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헌신할 것을 요구했다. 사기업도 아닌 국가 기관에서 비정규직 돌려막기가 이뤄졌던 셈이다.

2011년 4월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행정원으로 일하던 김씨는 2012년 12월 기초과학연구원(IBS)과 KAIST 두 곳에서 직함을 갖고 있던 A교수에게 입사를 지원해 IBS 기간제 행정직으로 입사하게 됐다. 소속은 IBS지만 출근은 KAIST로 하며 A교수의 행정처리 업무를 맡았다. 꼼꼼한 일처리로 3차례 근무평가에서 모두 90점 이상을 받았다.

2015년 김씨는 KAIST로 소속이 바뀌었다. 비정규직으로는 더 이상 IBS 소속으로 근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교수는 “소속이 바뀌어도 업무는 같다”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지난해 12월부로 김씨는 KAIST 소속으로도 2년의 근무를 채웠다. 4년여를 A교수 아래서 비정규직으로 지냈다. 그는 A교수로부터 근로계약 갱신을 약속받고 1개월을 더 평소와 같이 출근했다. 하지만 KAIST 인사과에서 “계약갱신을 승인할 수 없다”는 연락을 갑작스레 전해 왔다. 인사과는 “김씨는 문제가 없으나 기간제법과 규정을 어겨가며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계속 일하고 싶었다. “우선 퇴사하고 6개월가량 실업급여를 수급해 근로관계를 단절한 후 재임용을 신청하면 막지는 않겠다”는 얘기가 A교수와 인사과로부터 오갔다.

그 와중에도 김씨는 계속 근무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는지 지난 2월 금요일 저녁 A교수는 “오늘부로 정리한 거로 알고 있겠어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씨는 “교수님 저는 지금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습니다. 부디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는 답장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A교수는 “아쉬움이 크겠지만 정리해 달라”며 “월요일에 인사를 나누고 화요일부터는 안 나오길 바란다”며 요청을 거절했다. 김씨가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지난 2월 10일까지 일한 수당도 정상적인 근로 제공으로 인정받지 못해 받을 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천명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IBS에는 임직원 756명 중 김씨와 같은 비정규직 직원이 172명(22.7%)이다. 2012년 78명에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지만,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는 8명뿐이었다.

청년 비정규직은 젊음이라는 기회비용을 회사에 헌신한 이들이다. 해가 지날수록 다른 회사에 정규직으로 재입사할 기회는 좁아진다. 김씨는 “한 행정직원은 5년을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연구 계약직으로까지 직함을 바꿔 4년 넘게 일하고 있다”며 “소속을 바꾼 것을 계약 연장으로 여겼지 이렇게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IBS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김씨는 2014년 12월 우리 원을 퇴사했고 부당해고 제척기간인 3개월이 지났다”며 “A교수의 지시 때문에 우리 원의 일을 도운 것은 개인적인 부당 업무 지시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KAIST는 “김씨와의 근로계약이 종료된 것일 뿐 계약기간 중 해고하지 않았다”며 “본래 IBS의 업무를 위해 채용된 직원으로 2년 이상 근무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채용했다”고 답변서에서 항변했다.

이관수 노무사는 “현행 기간제법은 2년 단위 계약직근로자만 양산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2년 이상 근무할 경우는 소속만 바꾸는 비정규직 돌려막기 꼼수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법의 취지에 맞게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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