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세영] 역사를 잊은 교회 기사의 사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캠퍼스 안에 언더우드가(家)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로교인들은 물론이고 연세대 졸업생이나 재학생들도 잘 모른다. 외진 숲 속에 있는 데다 보행 동선과도 떨어져 있어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들르기 힘든 곳이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보도됐을 때도 ‘학교 안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불의의 사고로 이목을 끈 것도 잠시뿐, 이곳은 다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 선교사는 이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하고 근대화의 문을 연 선구자였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도 그가 설립한 곳이다. 언더우드가 기념관은 원두우 선교사의 아들로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지낸 원한경 선교사가 1927년 지어 입주한 사택이었다. 대를 이어 살던 후손들은 1974년 설립자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곳을 연세대에 기증했다. 약속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학교 측은 선교사 가문의 체취가 가득한 이곳을 유학생 기숙사나 교수 연구실로 사용했다.

2003년 비로소 기념관이 세워졌지만 지난해 11월 지하 보일러실에서 난 불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30년 가까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뻔뻔함, 화재예방조차 제대로 못해 한국교회의 소중한 유산을 훼손한 나태함을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기념관은 깨진 창문 사이로 비바람을 맞으며 지금까지 흉가처럼 방치돼 있다. 화재보험 처리가 됐으니 자금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개보수를 차일피일 미뤄온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연세대가 이곳을 다른 용도로 개발하기 위해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도 있지만 믿고 싶지 않다. 미션스쿨로서의 정체성이 아무리 흐려졌다 해도 그토록 후안무치하진 않을 것이다.

선교사 가문의 유산을 홀대한다고 연세대만 탓할 일도 아니다. 서울 명성교회에서 지난달 16일 열린 부활절연합예배에서도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예배에는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인 인요한 박사도 내빈으로 참석했다. 그는 호남 선교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진 벨 선교사와 교육 선교에 헌신했던 윌리엄 린튼 선교사의 후손이다.

인 박사가 단상에 올라 자리에 앉으려 했을 때 교회 장로로 보이는 이가 손짓까지 해가며 제지했다. 앞자리에는 홍준표 당시 대선 후보 등 정치인들이 앉아야 한다고 했다. 뒷자리로 옮기려 했지만 또 다시 제지를 당하자 인 박사는 결국 예배당을 박차고 나왔다. 그는 “부활절 예배가 아니라 전당대회 같았다. 선교사 가족을 이렇게 잡놈 취급할 수 있느냐”며 허탈해했다고 한다. 그의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날 부활절연합예배를 주요 장로교단을 포함한 60여 공교단이 공동으로 준비했으니 한국교회가 나서서 그 후손을 내친 것과 다를 바 없다. 배은망덕한 결례의 현장이 선교사들의 신앙유산을 물려받아 세계 최대 장로교회로 성장한 명성교회였다는 점도 가슴 아프다. 표를 얻기 위해 이곳저곳 고개를 내미는 정치인에게 앞자리를 내주는 모습이 권력 앞에 고개 숙인 한국교회의 자화상 같다는 점도 씁쓸하다.

선교사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교회 일부 단체와 목회자들은 교과서가 이를 공정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다며 논란과 반대를 무릅쓰고 박근혜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했다. 선교사들의 유산을 홀대하고 그 후손을 냉대하며 스스로도 존중하지 않는 역사를 누가 제대로 평가해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역사를 잊은 교회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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