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기] 제임스 본드의 죽음 기사의 사진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영화사상 최고의 캐릭터로 손꼽힌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2년 ‘살인번호’가 개봉된 이후 후속 작품들이 잇달아 흥행하면서 인기를 모았다. 시리즈는 2015년 ‘스펙터’까지 총 24편의 영화와 2편의 외전으로 제작됐다. 007 암호명 출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원작소설을 쓴 이언 플레밍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총애를 받았던 존 디가 보낸 외교 문서에서 착안했다는 주장이 있다. 유명 철학자이기도 했던 디는 유럽 스파이 시절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를 연 여왕에게 보내는 문서 말미에 007을 적었다. 00은 자신이 여왕의 두 눈이고 7은 성스러운 행운의 숫자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본드는 영국 해군 중령이자 정보기관 MI6에 소속된 스파이다. 그가 해치운 악당은 400명이 넘는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24번이나 세계를 구한 영웅치고는 적은 숫자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최소한의 무력만 행사한 절제력이 007의 인기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3년 ‘죽느냐 사느냐’에서부터 85년 ‘뷰투어킬’까지 12년 동안 7편의 007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 로저 무어경이 지난 23일 90세의 일기를 끝으로 영면했다. 조각 같은 얼굴에 완벽한 옥스퍼드 영어를 구사했던 그는 ‘최고의 본드’라는 호평을 얻었다. 실제 삶도 근사했다. 83년 ‘옥토퍼시’의 무대였던 인도에서 빈민층을 목격한 이후 사회봉사에 관심을 보이며 유니세프 대사로 활약했다. 그 공로로 대영제국훈장 2등급을 받고 기사 작위를 얻었다.

그가 숨지기 하루 전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일반인을 겨냥한 테러가 발생했다. 22명의 사망자 중에는 여덟 살 여자아이도 있었다.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의 소행이라 주장했다. 무어경의 별세와 함께 로맨틱한 영화가 끝난 느낌이다. 극장 문을 나서자 무차별 테러가 일어나는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글=김상기 차장,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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