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영석] 디지털 단식 기사의 사진
최근 한 지상파 드라마다. 40대 부부는 현대인들이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등 기억력 감퇴가 심각하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에 딸까지 합류해 일주일 동안 디지털 기기를 쓰지 않기로 한다. 성공하면 선물을 주는 당근책을 걸고서다. 스마트폰은 기본이고 아빠는 TV를, 엄마는 세탁기와 청소기, 딸은 컴퓨터 사용을 금지한다. 나흘째 되던 날 아빠는 상사의 메신저 친구 요청에, 엄마는 가계부 계산 때문에, 딸은 친구들과의 연락 탓에 중도 포기한다.

이들 가족이 접한 현상은 디지털 치매다. 한국 의사들이 처음 명명했단다. 국립국어원은 “디지털 기기의 발달 탓에 뇌를 사용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기억력 감퇴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실제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디지털 기기 없이 보내는 시간이 잠잘 때뿐인 이도 많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주변 사람과 부딪히는 스몸비족도 종종 목격한다. 치매가 노년층의 문제라면 디지털 치매는 연령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기술의 편리성 때문에 디지털의 덫에 걸린 셈이다.

일본 고노 임상의학연구소의 ‘디지털 치매 자가 진단법’을 보자. 7가지 중 절반이 넘으면 디지털 치매다. ①외우는 전화번호가 회사와 집뿐이다. ②친구와의 대화 중 80%는 메신저(이메일)로 한다. ③전날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④신용카드 계산서 서명 외엔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는다. ⑤처음 만났다고 생각한 사람을 전에 만났던 적이 있다. ⑥“왜 같은 얘기를 자꾸 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⑦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뒤 지도를 보지 않는다.

드라마 속 가족은 디지털 단식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다. 디지털 기기를 잠시 멀리해 디지털의 독을 해독하자는 취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디지털 디톡스를 체험할 수 있는 ‘캠프 그라운디드’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참가자들은 디지털 기기를 집에 두고 자연 속에서 뗏목을 만들거나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국내에선 경기도 양평군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다. 의사들은 멍 때리기도 추천한다. 미국 뉴스위크가 지능지수(IQ) 향상을 위한 31가지 생활습관 중 하나로 추천했다. 디지털 치매를 병으로 인식해야 할 때가 됐다. 앞서 진짜 세상 대신 디지털 기기만 쳐다보고 있는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

글=김영석 논설위원,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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