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다시 쓰는 ‘돈과 명예’ 기사의 사진
한 번 했던 이야기를 같은 지면에 다시 하는 것은 꽤나 민망한 일이다. 그래도 해보자고 마음먹은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이렇게 해보시오” 했던 제언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하는 건 그만큼 기대한다는 뜻임을 숨기지 않겠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3월 10일. 서울대 교수였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법학자로서 추가로 기쁜 점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가 9월 26일 끝난다. 이미 퇴임한 박한철 헌재 소장과 양 대법원장 후임을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었는데, 이제 그 권한이 새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대법관 14명 중 12명,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향후 5년 안에 임기를 마친다. 그 후임자를 모두 문 대통령이 임명하게 됐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해 최고 법관 20명에게 임명장을 주는 흔치 않은 기회를 이 정부는 얻었다. 이들의 임기는 6년씩이어서 문 대통령이 갖출 사법부 진용은 강산이 어느 정도 바뀌어야 달라질 수 있다.

사법부 흐름을 좌우하는 인사권을 행사할 때 문 대통령이 후보자들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임기가 끝난 뒤 변호사 하실 겁니까?” 하겠다는 사람은 배제하고,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을 임명하는 ‘인사 관행’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여름 우리는 법조계 전관비리 실태를 목격했다. 1년에 100억원씩 벌었다는 홍만표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이었다. 수임료를 50억원이나 받은 최유정 변호사는 부장판사를 지냈다. ‘전관(前官)’ 변호사에게 ‘현관(現官)’ 판검사가 편의를 봐주는 오랜 관행은 고질적인 비리가 됐다.

비리는 수사해 단죄해야 하는데 그 수사와 재판을 현관이 하니 제대로 근절되지 않았다. 대한변협은 판검사 선발시험과 변호사 자격시험을 이원화하는 입법안을 내놨다. 판검사가 퇴직 후 변호사를 하는 데서 전관비리가 비롯되니 그러지 못하게 두 길을 법으로 분리하자는 거였다.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과 부딪쳐 법제화가 쉽지 않다.

굳이 입법을 통하지 않고 전관 변호사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이 대통령 인사권에 있다. 변호사 안 하겠다는 사람만 판검사 고위직에 앉히면 된다. 전관의 영향력은 자신도 곧 전관이 될 고위직 판검사를 통해 주로 발휘돼 왔다. 그런 자리에 전관이 안 될 사람, 그래서 청탁을 들어줄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을 골라 앉히면 기존 전관의 힘도 자연히 줄어들 테다.

검찰이 이렇게 망가진 건 두 가지 굴레 탓이었다. 하나는 정치권력, 다른 하나는 전관 선배들이다. 권력에 잘 보여야 고위직에 승진하고, 그 자리에서 전관 그룹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해야 자신도 곧 합류해 같은 편의를 누릴 수 있었다. 정치권력을 통해야 명예를 얻고 명예를 얻으면 돈이 따라오는 구조에서 정의로워야 할 수사는 산으로 가곤 했다.

“변호사 하실 겁니까?” 이 질문은 “돈과 명예 중 하나만 택하라”는 말과 같다. 그 답변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약속일 뿐이지만 대통령과의 약속이고 곧 국민과의 약속이다. 어길 경우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 변호사로 돈을 벌겠나, 고위 판검사로 명예를 갖겠나. 이것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자, 나아가 검사장과 부장판사 승진 대상자에게 묻기를 기대한다.

사법부 요직 인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고 검찰 개혁 요구는 어느 때보다 높다. 대법관부터 부장판사까지, 검찰총장부터 검사장까지 명예를 택하는 인물로 채우기에 지금보다 좋은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얘기를 다시 하는 것이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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